항목 ID | GC026007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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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止 |
영어음역 | An Ji |
이칭/별칭 | 자행,고은,문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예촌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창섭 |
[정의]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탐진(耽津). 자는 자행(子行), 호는 고은(皐隱). 찬성 안사종(安士宗)의 아들이고, 형은 안기(安起)이고, 동생은 안일(安逸)이다.
[활동사항]
안지(安止)[1377~1464]는 조선시대인 1414년(태종 14)에 문과에 2등으로 합격하여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에 임명되었다가 중시(重試)에 합격하여 집현전부제학(集賢殿副提學)을 지냈고, 이조참판·공조판서가 되었다. 1449년(세종 31) 『고려사(高麗史)』 개찬(改撰) 과정에서 권제(權踶)와 함께 마음대로 내용을 줄이고 누락시킨 것이 문제가 되어 고신(告身)을 빼앗겼다가, 1452년(문종 2)에 고신을 돌려받고 1455년(단종 3)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가 되었다. 여러 차례 승진하여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봉조청(奉朝請)이 되었고, 김제시 용지면 안촌(安村)마을에 은거 중이던 형 안기의 뒤를 이어 이곳에서 만년을 보냈다.
[저술 및 작품]
문장을 잘 짓고 해서(楷書)에 능하여서 세종이 태종을 위하여 『금자법화경(金字法華經)』을 베끼도록 명하였다. 1445년(세종 27) 공조참판으로 권제(權踶)·정인지(鄭麟趾) 등과 함께 「용비어천가」를 지어 바쳤고, 1449년(세종 31) 『고려사』 개찬과정에서 권제(權踶) 등과 함께 참여했다. 『고은선생문집』에 시문이 일부 남아 있다.
[묘소]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예촌리 한절마을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경산의 조곡서원(早谷書院)에 제향되었고,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매년 음력 3월 4일 후손들이 시제를 모시며 고은교(皐隱橋) 답교(踏橋) 행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