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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788
한자 柳志和
영어음역 Yu Jihwa
이칭/별칭 반구당(伴鷗堂),후성(後聖)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창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효자
출신지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
성별
생년 1599년(선조 32)연표보기
몰년 1680년(숙종 6)연표보기
본관 진주(晋州)
대표관직 회덕현감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후성(後聖), 호는 반구당(伴鷗堂)이다.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유희춘(柳喜春)이고, 아버지는 사복시주부 유광복(柳光復)이며, 어머니는 승지 남치상(南致祥)의 딸이다.

[활동사항]

유지화(柳志和)[1599~1680]는 1633년(인조 11)에 효행으로 천거되어 창릉참봉(昌陵叅奉)에 제수되었으며, 선공감봉사(繕工監奉事)·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근친하는 일로 귀향하였다가, 병자호란을 당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남한산성에 호종하고 척화론을 주장하였다. 이어 통진현감·회덕현감 등에 제수되었다. 계모가 세상을 떠나자 고향으로 돌아와 당대의 명유들과 경전을 토론하며 만년을 보냈다.

[상훈과 추모]

1680년(숙종 6)에 호종공신(扈從功臣)에 추록되고 통정대부에 승서(陞敍)되었다.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에 있는 남산서원(南山書院)에 배향하였다. 조선 숙종묘라리에 충신 효자 통정대부 행회덕현감 유지화의 정려(忠臣孝子通政大夫行懷德縣監柳志和之閭)를 세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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