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7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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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之濂 |
영어음역 | Song Jiryeom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몽산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승대 |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낙향한 문신이자 학자.
[가계]
본관은 은진(恩津). 사위는 임피현감을 지낸 홍수제(洪受濟)이다.
[활동사항]
송지렴(宋之濂)이 언제 김제 지역으로 내려왔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1660년(현종 1) 3월부터 7월까지 태인현감으로 재직하였다. 이후 숙종 때 화순현감으로 재직하다 옥사를 잘못 처리하여 제주에 유배되었는데, 당시 좌참찬으로 있던 11촌 족숙(族叔) 송준길(宋浚吉)이 여러 모로 애를 쓴 결과 감등(減等)이 되어 해남으로 유배되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는 송지렴이 전라도 만경의 본가(本家)에 있을 때 유배지가 결정되었고, 석방된 후 다시 만경으로 돌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송지렴은 아들이 없이 딸 하나를 두었는데, 이 딸을 홍수제에게 시집보낸 뒤 외손자들을 친손자처럼 키웠다고 한다. 송지렴의 딸 은진송씨는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였는데, 이를 두고 송지렴은 “내 딸 하나가 열 아들 못지않다.”며 자랑하며, 또한 “시부모 봉양과 가정의 화목을 이루는 데 군자와 같다.”고 칭찬하였다.
홍수제의 장남인 홍우현의 묘비에, 홍우현이 11세 때인 1664년(현종 5) 해남에 유배되어 있는 외조부 송지렴을 만나기 위해서 자주 왕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어 그가 어린 시절 만경읍의 외가에서 생활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홍우현은 1682년(숙종 8) 29세 때 이곳 만경에서 진사시 3등으로 합격하기도 하였다.
[상훈과 추모]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 101번지에 숙종 때 세운 것으로 보이는 선정비가 있다. 비제는 ‘송후지렴청백선정비(宋侯之濂淸白善政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