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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460
한자 利城縣
영어음역 Iseong-h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백덕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757년연표보기
시행연도/일시 757년
폐지연도/일시 일제강점기

[정의]

757년부터 조선시대 말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에 설치된 행정구역.

[제정경위 및 목적]

통일신라는 757년(경덕왕 16) 당의 방식을 따라 주·군·현 간의 영속 체계를 강화하면서 전국에 걸쳐 행정 지명을 모두 중국식 한자 지명으로 고쳤는데, 그때 내리아현(乃利阿縣)이성현(利城縣)으로 개칭되어 김제군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관련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이성현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김제시 공덕면 공덕리 일대에 삼국시대 석실분이 조사되었다. 이동·이서·이북의 3개 면으로 구성되었다. 만경강 하구의 비옥한 평야 지역에 위치한 내리아현에는 창(倉)이 있었고, 만경과 함열을 연결하는 도로가 발달하였다.

[변천]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영역이었고, 백제 때는 내리아현으로 불렸다. 757년 이성현으로 개칭되어 김제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때의 지방 행정 제도 개편에 의해 1018년(현종 9)에 전주의 속현으로 병합되어 조선시대 말까지 유지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전주의 비옥한 토지로서 전주에서 서북쪽으로 떨어져 만경강 남안(南岸)의 만경과 김제 사이에 위치했으며, 전주의 이성창(利城倉)이 있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 때 이성현 지역을 이루고 있던 이동면·이서면·이북면이 만경군으로 이관되었다가,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만경군이 폐지되어 김제군에 병합됨으로써 김제군에 속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이성현이 있던 현재의 김제시 청하면 지역은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김제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며 발전해 왔으며, 그 영속성을 보여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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