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4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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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碧骨郡 |
영어음역 | Byeokgol-g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백덕규 |
[정의]
백제 때부터 757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개설]
벽골군(碧骨郡)에 관한 기록은 부족하여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330년(비류왕 27) 벽골제 축조 기사로 보아 벽골제와 관련성이 있다는 설과 볏골[벼의 고을]이라는 말에 연원이 있다는 설이 있다.
[관련기록]
『삼국사기』 등의 기록에 벽골·두내산·수동산(首冬山)·무근촌(武斤村)·구지지산(仇知只山)·야서이(也西伊) 등 여러 지명이 보이지만 언제부터 백제의 영토였는지, 지방 행정 체제는 어떠하였는지 등 벽골군의 현황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변천]
삼국시대에는 벽골군으로 명명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의하면 김제의 백제 때 이름이 벽지산 또는 벽성이었다고 하며 벽성은 한때 백제 부흥 운동의 근거지였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는 663년 주류성 함락 직후부터 사실상 당과 신라에 양분되었는데, 백제 영토의 동반부는 신라에 점령되었고 서반부 평야 지대는 당에 직속되었다.
당의 점령지는 웅진도독부 관할 하에 7주 51현으로 개편되고, 동시에 각 주·현의 이름도 중국식으로 바뀌었는데, 이때 당의 속령에 포함된 김제 지방의 고을들 중 벽골은 벽성(辟城)으로 개칭되어 고사주(古四州)[현재의 고부]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676년 당나라군과 신라의 기벌포 해전을 끝으로 당은 한반도에서 철수하였고, 이로써 백제의 영토는 온전히 신라에 복속되었다.
신라에 병합된 백제 영토는 685년(신문왕 5)까지 신라식의 4주 3소경 및 다수 군·현으로 재편되었다. 그와 함께 각 고을의 이름도 당나라 군대가 중국식으로 고쳤던 주·현의 이름들은 복구되었지만, 상당수가 점차 신라화하였다. 757년(경덕왕 16) 당의 방식을 따라 주·군·현·간의 영속 체계를 강화하면서 전국에 걸쳐 행정 지명을 모두 중국식 한자 지명으로 고칠 때 전주총관부의 관내인 벽골군은 김제군으로 개칭되었다.
[의의와 평가]
벽골군은 삼국시대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명칭으로서뿐 아니라 한때 백제 부흥 운동의 근거지로서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