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0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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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Geobukbawi |
영어의미역 | Geobukbawi Rock |
이칭/별칭 | 「박장군바위」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백학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정길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백학동에서 거북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거북바위」는 백학동의 용곳 뒷산에 있는 거북 형상의 바위에 얽힌 신이담이자 암석유래담이다. 이를 「박장군바위」라고도 한다. 첫째 이야기는 거북바위 등에 임씨가 팠다는 맷돌 흔적이 남아 있는 흔적전설이며, 둘째 이야기는 박석정(朴石精)[김제시 백학동 용곳 출생]의 충의형 암석전설이다. 박석정은 1592년(선조 25)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에 바람 앞의 등불 같은 나라를 구하려고 스스로 의병을 모집하여 지금의 진안 곰티에서 왜적을 맞아 싸웠던 인물이다.
[채록/수집상황]
1995년 김제시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김제시사』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김제시 백학동 용곳 뒷산에는 마치 거북이가 앉아서 고개를 옆으로 바라보는 모습의 바위가 있다. 이 거북바위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그 하나는 거북바위 등에 남아 있는 맷돌의 흔적에 관한 전설이다. 용곳에 살던 임씨 성을 가진 사람이 메밀이나 콩을 가는 데 쓰는 맷돌이 없어서 불편을 겪었다. 궁리 끝에 임씨는 거북바위 등에 맷돌 아래짝을 파 나갔다. 맷돌이 거의 만들어질 즈음 바위에서 붉은 피가 솟아올랐다. 그 날 밤 임씨의 아들 한 명이 까닭을 모르게 죽더니 며칠 사이에 아들 삼형제가 차례로 죽었다. 임씨는 신령스런 바위를 건드린 죄로 아들 삼형제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그 뒤부터는 어느 누구도 감히 거북바위를 건드리지 않았으며, 지금도 거북바위 등에는 임씨가 팠다는 맷돌 흔적이 남아 있다.
또 다른 전설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지낸 박석정 장군의 어머니 박씨 부인의 태몽에 대한 전설이다. 용곳에 살던 박씨 부인이 꿈에 들 건너 황산에서 큰 거북 한 마리와 새끼 거북 두 마리를 치마폭에 안고 오다가 새끼 거북 두 마리는 두월천[용곳 앞들에 있는 냇가] 가운데 떨어뜨리고, 어미 거북은 마을 뒷산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꿈이 이상해서 박씨 부인이 아침 일찍 마을 뒷산에 가 보았더니 꿈에 안고 왔던 어미 거북과 똑 같은 바위가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박씨 부인은 혹시나 하는 맘으로 두월천에 가보았는데 거기에도 뒷산에 있는 바위와 같은 바위가 있었다.
거북바위 꿈을 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갖게 되었고 달이 차 낳은 아이가 바로 박석정이다. 박석정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스로 의병을 모아 곰티에서 많은 왜적을 물리치는 공을 세우고 전사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나라에서는 승정원좌승지의 벼슬을 내렸다. 사람들은 이 거북바위를 박석정 장군의 성을 따서 ‘박장군바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박씨의 묘소 앞에 있는 비석의 비문에도 거북바위에 대한 이야기가 새겨져 있고, 재각에는 ‘구룡재(龜龍齋)’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모티프 분석]
「거북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신성한 바위의 훼손과 가족의 파멸’, ‘신성한 바위의 태몽과 영웅의 탄생’ 등이다. 첫째 이야기는 신성한 바위를 임의로 훼손한 벌로 파멸에 이르게 된 임씨 가족에 대한 응보담이다. 둘째 이야기는 박씨 부인의 거북바위 태몽을 통한 영웅탄생담이자 의병대장 박석정 장군의 활약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