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1335
한자 龍山里
영어공식명칭 Yongsa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용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미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연표보기 -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용산리 개설
성격 법정리
가구수 122세대
인구[남/여] 217명[남자 96명, 여자 121명]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용산리(龍山里)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남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용산 마을, 율리 마을의 2개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명칭 유래]

용산리는 용산 마을의 지명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용산 마을은 가야산에서 마을 뒤까지 남서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용과 같은 형상이라 ‘용산’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옛날 중국의 맹가라는 사람이 9월 9일 낙모대에서 술을 마시며 풍류를 즐기던 곳이 용산인데, 마을 근처에 낙모대가 있어 ‘용산’이라 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용산리의 율리 마을은 옛날 마을 앞 냇물에 배를 묶어 두던 곳이라 ‘배속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 주변에 밤나무가 많아 ‘율리’라고 한다는 설도 있으며, 4~5세기 중국의 시인 도연명이 살았던 땅의 이름이 율리였으므로 훌륭한 문장가가 이곳에 살았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용산리는 삼한 시대에는 진한과 변한의 영토에 속해 있었다. 통일 신라 때에는 가소현에, 고려 초기에는 가조현에 속하였다. 현종 때는 합천에, 원종 때는 합천에서 분리되어 가조현[거제현]에 속하였다. 조선 초에는 제창현이라 하다가 거창현에 병합되면서 용산리거창현에 속하게 되었다. 조선 시대 가조현이 가동면과 가서면으로 분할되었으며, 1911년 거창군 가동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3월 용산리가 속한 북쪽 7개의 리를 분리하여 가북면이라 개칭하였다.

용산리의 용산 마을은 400여 년 전 성산 배씨가 마을을 형성했다고 한다.

[자연환경]

용산리의 서쪽에는 보해산이, 동쪽에는 우두산의 서쪽 장군봉이 위치하고 있다. 용산리는 남쪽을 제외하고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중앙부는 가천천이 형성한 침식 분지로 평지를 이루고 있다.

용산리를 남북으로 종단하듯 흐르는 가천천은 용산 마을 앞에서 보해산에서 발원한 지류와 장군봉의 북서쪽 사면에서 발원한 지류가 합류하여 세 개의 하천이 합류하는 곳이기 때문에 침식력이 강하게 작용하여 가북면에서는 가장 넓은 침식 분지를 형성한다. 또한 용산 마을은 배후에 용의 형상을 한 산지가, 앞에는 세 개의 하천이 합류하며 흐르고 있으므로 풍수지리적으로도 길지인 배산임수 지형에 입지하고 있다.

[현황]

용산리는 2016년 5월 말 현재 122세대에 남자 96명, 여자 121명으로 총 217명이 거주하고 있다. 현재 용산리에 속한 행정 마을은 용산 마을, 율리 마을 2개이며, 이 중 용산 마을이 100세대에 남자 81명, 여자 100명으로 총 181명이 거주하며 큰 마을을 이루고 있다.

용산리의 중앙으로 지방도 1099호선이 종단하듯 남북으로 달리며 가북면가조면을 잇고 있다. 용산 마을에서 서쪽으로는 금귀산, 보해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동쪽으로는 우두산가야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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