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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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普成 學院 |
영어공식명칭 | Boseong Hagwon|Boseong Educational Institut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광욱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중앙리에 있었던 사립 교육 기관.
[교육 목표(교훈 포함)]
남녀 아동의 교육을 목표로 하였으며, 특히 노동 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변천]
거창 청년회에서는 지역의 뜻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1925년 거창 청년 회관에 노동 야학을 열었다. 이 야학을 통해 80여 명의 가난한 학생들이 보통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청년회는 1927년에 고등과 야학을 신설했으며, 보신 강습소를 인수하여 주간 과정의 학교도 개설했다. 보성 학원을 든든히 뒷받침한 것은 거창 청년회로, 특히 거창 청년회의 중심 인물인 주남재의 힘이 컸다. 신용길 등 두 명의 교사가 헌신적으로 교육에 임해 주간 40명, 야간 백여 명 등 200명에 가까운 학생들에게 배움을 선사했다.
경상남도에서 유일한 노동 교육 기관이었던 보성 학원은 1932년 이후 재정적 이유로 폐교의 위기를 맞았다. 이때 거창 지역의 몇몇 사람들이 보성 학원 유지회를 만들어 지원을 했다. 이 유지회의 임원으로는 회장 신용희, 이사 문복환, 최영숙, 신창재, 장동근, 이규정 등이 있었다. 또한 평의원으로는 주남재, 한명수, 전경현, 신권재, 신창선, 임종학, 김홍준, 신중목, 유상범, 이화종 등이 활동했다.
[교육 활동]
보성 학원은 야학을 통한 보통 교육 및 고등 과정 설치, 노동 교육에 중점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