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5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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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宇鎭 |
이칭/별칭 | 성래(聖來)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상배 |
[정의]
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강남구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광주일대를 관할하는 광주유수를 지낸 문신.
[가계]
김우진의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성래(聖來)이다. 아버지는 영의정 김상철(金尙喆)이며, 어머니는 이요흠(李堯欽)의 딸이다. 부인은 윤득양(尹得養)의 딸이다. 1754년(영조 30)에 출생하였고 사망 시기는 알 수 없다.
[활동 사항]
음서로 참봉에 올랐다가 1772년(영조 48) 정시문과에 급제한 후 1777년에 정언(正言)이 되었다. 정자(正字)·이조정랑(吏曹正郞), 1779년 부수찬(副修撰), 직각(直閣), 1782년 승지(承旨) 등을 지냈다. 1783년(정조 7)에 대사성(大司成)에 오른 이후 이조참의(吏曹參議)를 거쳐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대를 다스리는 광주유수에 임명되어 백성을 보살폈고 1786년까지 이조참의와 대사성을 지냈다. 1789년 이담(李湛)의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추국(推鞫)을 받고 제주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으며, 1791년 부친상을 당하여 풀려났다가 상을 치른 후 이듬해 2월 교동(喬桐)으로 이배되었다.
[상훈과 추모]
1830년(순조 30) 손자 김긍창(金兢昌)의 탄원으로 신원되어 관작이 회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