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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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尙運 |
이칭/별칭 | 유구(悠久),약재(約齋),누실(陋室),충간(忠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상배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율현동에 밤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지는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유상운의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유구(悠久), 호는 약재(約齋) 또는 누실(陋室)이다. 아버지는 좌랑 유성오(柳誠吾)이며, 어머니는 판서 박동량(朴東亮)의 딸이다. 1636년(인조 14)에 출생하여 1707년(숙종 33)에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유상운은 1666년(현종 7) 문과에 급제하여 언관직을 두루 역임한 후 1680년 대사간에 특진되었다. 숙종 때 서인과 남인 사이의 권력 다툼에서 서인의 입장을 견지하였으며,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리될 때는 소론에 가담하였다. 1685년에 이조판서를 지냈고 1694년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남인이 정권에서 물러난 후 1695년(숙종 21)에 우의정을 거쳐 다음해 영의정에 올랐다. 이후 판중추부사로 1701년 장희빈에 대한 처벌에 정상을 참작하라는 글을 올렸다가 탄핵당하여 이듬해 직산으로 유배되었다가 1704년 풀려나 복직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서울특별시 강남구 율현동 일대 탄천을 끼고 밤나무골이란 자연지명이 있었다. 이 지명은 이 일대에 밤나무가 많이 심어진 데서 연유한 것인데 전설에 의하면 이 밤나무를 유상운이 심었다고 한다. 오늘날 율현동의 지명 이름은 바로 이 밤나무고개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유래되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나주 죽봉사(竹峰祠)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