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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698
한자 寧國洞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구본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45년 - 「영국동」 저자 유희경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36년 - 「영국동」 저자 유희경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707년 - 「영국동」이 수록된 『촌은집』 간행
배경 지역 영국동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성격 한시
작가 유희경

[정의]

조선 중기 유희경도봉산에 있는 영국동을 소재로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개설]

「영국동(寧國洞)」은 조선 중기의 문신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1545~1636]이 도봉산에 위치하고 있는 영국동 골짜기에서 느낀 감흥을 표현한 한시이다. 유희경은 여러모로 도봉산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1573년에는 양주 목사(楊州牧使)로 부임한 남언경(南彦經)을 도와 조광조(趙光祖)[1482~1519]를 배향한 도봉 서원(道峯書院)을 건립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그 스스로 침류당(枕流堂)을 지어 그곳에서 자적(自適)하며 시를 짓기도 했다. 「영국동」 또한 도봉산에서 기거하던 때의 일상을 담아낸 것이다. 「영국동」유희경의 시문집 『촌은집(村隱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유희경의 자는 응길(應吉), 호는 촌은, 본관은 강화(江華)이다. 가계는 자세히 전하지 않는데, 허균(許筠)[1569~1618]의 『성수시화(惺叟詩話)』에 따르면 그가 천인 신분이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남언경에게 문공가례(文公家禮)를 배워 상례(喪禮)에 특히 밝았으며, 박순(朴淳)[1523~1589]으로부터 당시(唐詩)를 배웠다. 그는 한시를 잘 지어 당시의 사대부들과 교유하였는데, 자기 집 뒤 시냇가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들어 침류대(枕流臺)라 하고, 그곳에서 이름 있는 문인들과 시로써 화답하였다. 저서로 『촌은집』 3권과 『상례초(喪禮抄)』가 전한다.

[구성]

「영국동」은 4구로 구성된 칠언 절구로 기구(起句)와 승구(承句)에서는 비 내리는 영국동 골짜기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고, 전구(轉句)와 결구(結句)에서는 술에 취한 시인 자신이 부축을 받아 미끄러운 길을 딛고 거처로 돌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내용]

공림석기취비비(空林夕氣翠霏霏)[빈숲의 저녁 기운 푸르게 흩어지고]

일학천성요석비(一壑泉聲遶石扉)[온 골짜기엔 시냇물 소리 돌문을 둘렀네]

산우사수태경활(山雨乍收苔逕滑)[산비가 잠깐 그치니 이끼 낀 길 미끄러운데]

목련화리취부귀(木蓮花裏醉扶歸)[목련꽃 속에서 취한 채 부축 받아 돌아가네]

[특징]

제1구의 ‘비(霏)’, 제2구의 ‘비(扉)’, 제4구의 ‘귀(歸)’를 운자로 썼다. 평기식(平起式)으로서, 평성 미운(微韻)으로 압운하였다.

[의의와 평가]

저자 유희경도봉산, 특히 도봉 서원이나 침류당과 깊은 인연이 있는 인물이니만큼 「영국동」에서도 도봉산영국동 골짜기의 모습과 그곳에서 술에 취해 노니는 시인 자신의 모습을 잘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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