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6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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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威明 |
이칭/별칭 | 회여(晦汝),송천(松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252-1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양혜원 |
출생 시기/일시 | 1640년 - 조위명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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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68년 - 조위명 별시 문과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685년 - 조위명 졸 |
부임|활동지 | 조위명 활동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한양(漢陽) |
대표 관직 | 예조참판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목서흠 신도비 비문을 찬한 조선 후기 문신.
[개설]
조위명(趙威明)[1640~1685]은 예법에 밝았으며, 명문장가이자 명필로 이름을 떨쳤다.
[가계]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회여(晦汝), 호는 송천(松泉). 조선의 개국공신을 두 명 배출한 집안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조현(趙玹)이고, 할아버지는 조익남(趙翼男)이다. 아버지는 조구(趙緱)이며, 어머니는 이현(李灦)의 딸이다. 형조판서를 역임한 작은아버지 조경(趙絅)에게 글을 배웠는데, 둘 다 당대에 문명(文名)이 매우 높았다.
[활동 사항]
조위명은 음보로 세자익위사 부수(世子翊衛司副率)로 관직에 나아갔다가 1668년(현종 9)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홍문관 응교 등을 두루 거쳤다. 숙종 대에는 성균관 직강에 이어 동부승지, 우부승지, 충청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676년(숙종 2) 태조 부례(祔禮)의 옥책(玉冊)을 써서 그 공로로 가자되었고, 그 뒤 대사간과 도승지, 예조참판을 지냈다.
[학문과 저술]
조위명은 문장으로 명성이 있었고 절묘한 글씨로 이름이 높았다. 이 때문에 묘갈문(墓碣文)이나 신도비 비문의 글씨를 많이 부탁받았는데, 대표적으로 허목(許穆)이 찬한 동창위(東昌尉) 권대항(權大恒)의 비문과 양주의 지중추부사 목서흠(睦敍欽)의 비문, 대군사부(大君師傅) 권적(權蹟)의 표(表), 포천의 조익남(趙翼男)의 비문 등이 남아 조위명의 글씨를 전하고 있다. 이 중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의 목서흠 신도비(睦敍欽神道碑)는 조경(趙絅)이 찬한 것을 조위명의 글씨로 새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