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4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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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澍 |
이칭/별칭 | 오산군(烏山君),정목(靖穆)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민정 |
출생 시기/일시 | 1437년 - 이주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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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44년 - 이주 오산군에 책봉 |
활동 시기/일시 | 1471년 8월 25일 - 이주 원종공신에 책록 |
몰년 시기/일시 | 1490년 - 이주 졸 |
출생지 | 이주 출생지 - 서울 |
묘소|단소 | 오산군 이주 묘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1-1(N37° 39″ 44.3306″, E127° 01″ 32.8627″) |
성격 | 왕족 |
성별 | 남 |
본관 | 전주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왕족.
[가계]
오산군(烏山君) 이주(李澍)는 전주 이씨로 조선 전기 종실이다. 아버지는 세종의 4남 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이다. 이구의 둘째 아들로서, 형제로는 정실 소생만 이준(李浚)·이순(李淳)·이정(李淨)·이징(李澄)·이함(李涵)·이인(李潾)·이탁(李濯)·이옥(李沃) 8형제가 있다. 이 중 이준은 후에 세조에게 총애를 받고 예종 때 영의정까지 오르게 된다. 이주의 첫 번째 부인은 풍기 군부인(豊基郡夫人) 창녕 성씨(昌寧成氏), 두 번째 부인은 풍기 군부인 연안 김씨(延安金氏)이다.
[활동 사항]
이주는 세종의 친왕손이기 때문에 어릴 때 궁중에서 자랐다. 세조가 수양 대군이던 시절부터 친밀하게 지내, 세조가 사냥을 나가거나 열무(閱武)를 거행할 때나 후원에서 습사(習射)를 할 때마다 함께 하고 기름종이나 물소 가죽 등을 상으로 받았다는 기사가 실록에 누차 확인된다. 이러한 기사들로 미루어보아 이주가 아버지인 임영 대군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세조를 지지했던 측근들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주는 세조 대에 은총이 매우 융숭하여 세조가 친아들과 같이 여겼으며, 문소전(文昭殿)·사옹원(司饔院) 도제조(都提調)를 겸하여 일을 잘 처리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이주 졸기(卒記)에 남아 있다.
이주의 정치적인 입지는 예종과 성종 대에도 그대로 이어져서 형제인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이 역모로 엮여서 광주(廣州)의 적소에서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는 이준을 서울에 매장하는 일에 대하여 그가 역모 죄인임을 이유로 들어 반대했을 만큼 정치적 입장을 명확히 밝혔던 것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이주의 탄탄한 입지는 세조의 가장 긴밀한 측근이자 당대 최고의 실세 중 한 사람이었던 홍윤성(洪允成)과의 일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송와 잡설(松窩雜說)』에 따르면, 이주는 홍윤성이 영추문(迎秋門)을 통해 대궐에 나아가는 것을 보고 종각 모퉁이에서 그가 탄 가마를 기다리며 서있었다고 한다. 이주가 홍윤성을 보자 길게 읍을 하였고 이를 본 홍윤성도 가마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는데, 마침 장맛비가 내리고 있던 때여서 홍윤성의 장화가 진흙탕에 빠져 엉망이 되었고 이것이 모두 이주가 홍윤성을 골탕 먹이기 위해 계획한 것이었다는 이야기다.
이주는 종친에 대한 처우나 지위가 나아지기를 여러 차례 건의하였는데,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1484년(성종 15) 12월에 성종에게 종친의 체모 유지를 위해 중죄를 범하더라도 토지와 노비는 몰수하지 말자는 내용의 건의를 한 것이다. 후사가 없어 동생인 정양군(定陽君) 이순(李淳)이 자신의 아들로 하여금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1444년(세종 26) 중의대부 오산군(中義大夫烏山君)으로 책봉되었으며, 이후 여러 번 승진하여 현록대부(顯祿大夫)에 이르렀다. 1471년(성종 2) 8월 을축일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묘소]
이주의 묘는 도봉구 방학 사거리에서 우이 계곡 방향으로 진행하다 신동아 아파트 앞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나오는 왼편 구릉에 있다. 단분 단독장으로, 묘표·문인석·장명등·혼유석·상석·향로석·비석 등을 갖췄다. 묘표의 비문에는 ‘현록대부 오산군 시 정목공 휘주지묘(顯祿大夫烏山君諡靖穆公諱澍之墓)’라고 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정목(靖穆)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