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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안산 내시 묘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373
한자 楚安山內侍墓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산202-1 외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은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초안산 내시 묘군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산202-1 외|노원구 월계동 산8-3 외(N37° 38′ 23.6690″, E127° 02′ 51.6759″외)지도보기
성격 묘역
관련 인물 승극철(承克哲)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과 노원구 월계동 서울 초안산 분묘군에 있는 조선 후기 내시 계층의 묘역.

[개설]

내시는 궁궐 내에서 잡무를 맡아 보던 내시부의 관료로 종2품 상선(尙膳)에서 종9품 상원(尙苑)까지 두었다. 내시는 장번(長番)과 출입번(出入番)으로 나누어 업무를 보았다. 장번은 왕 가까이에서 장기간 상주하였으므로 오랫동안 권세를 누리기도 하였고, 출입번은 궐외에서 출퇴근하는 내시로 처첩을 거느리고 생활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초안산 지역은 옛 지명이 양주 각심사리로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 “내시들의 묘는 도성에서 10리 밖에 두게 하라”는 규정에 맞는 위치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이곳에는 내시 연양군파(延陽君派) 및 여러 내시들의 묘가 흩어져 있다.

[위치]

초안산 내시 묘군(楚安山內侍墓群)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산202-1번지와 노원구 월계동 산8-3번지 등지에 위치한다. 내시 묘역은 대부분 초안산 월계로 북단 묘역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월계로에서 초안산길을 따라 인덕 대학교를 지나 청백 아파트 뒤쪽으로 들어서면 예안 이씨(禮安李氏)의 묘역이 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계곡부를 지나 300m 정도 등산로를 따라가면 초안산의 동남부 정상부에 이르는데, 정상부에서 북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정자 아래에 내시 승극철(承克哲) 부부 묘가 있다.

[변천]

초안산 내시 묘군은 적어도 17세기 전반기에 조성되어 조선 말까지 조성되었다. 한편 초안산에서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로 이장한 내시 묘가 있는데, 김계한(金繼韓)[?~1624]의 묘와 김광택(金光澤)의 묘이다. 김계한은 선조 때 호성공신(扈聖功臣)으로 연양군에 올라 숭록대부에 봉해짐으로써 연양군파 시조로 모셔졌다. 연양군파는 김계한~김광택~김선필, 정중명~서경달~최봉좌~백희장~홍명복 등으로 이어져 선조 때부터 철종 연간에 이르기까지 초안산 묘역을 선산으로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는 원래 3대 김선필의 묘만 있었는데, 1993년 김계한의 13세손인 유충현이 양주로 이장하였다고 한다.

[형태]

초안산에 남겨진 현전 내시 묘 중에서 연대가 명확한 묘는 내시부 상세(內侍府尙洗) 승극철 부부 묘이다. 승극철은 연양군파 김계한의 3세손으로 정3품 통훈대부의 품계를 받은 인물이다. 승극철 부부 묘는 쌍분으로 좌향은 서향이다. 묘표, 혼유석, 상석 등을 갖추었다. 묘표는 원수 방부형(圓首方趺形)으로 1634년(인조 12)에 건립하였다. 규모는 비신 51.5×16.5×117.5㎝, 대석 88×33.5×57.5㎝이다. 원수 방부형 묘표는 상단이 반원형이고, 대석에는 문양을 넣지 않은 단순한 형태이다. 이러한 묘표는 초안산에 많이 건립된 유형으로 단순화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금석문]

승극철의 묘표에 소략한 금석문이 남아 있다. 비문의 앞면에는 ‘통훈대부 행내시부 상세 승공 극철 양위 지묘(通訓大夫行內侍府尙洗承公克哲兩位之墓)’라고 적혀 있으며, 뒷면에는 ‘숭정 기원 후 갑술 삼월 일 립(崇禎紀元後甲戌三月日立)’이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현재 초안산 내시 묘군의 형태를 정확히 알 수 있는 묘는 승극철 부부 묘밖에 없는 상태이며, 다른 묘들은 돌보는 후손이 없어 봉분·비문·상석 등이 버려진 상태이거나 도굴 및 이장되었다. 현전하는 우리나라 내시 묘역은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외동 이말산 조선 시대 분묘군, 은평구 진관내동 의상봉과 용출봉 중골 마을의 내시 묘역인 이사문공파(李似文公派) 묘역 등이 있다.

그중 이사문공파 묘역은 약 45기의 묘가 현전하는 가장 규모가 크고 양호한 내시 묘역이다. 이 외에 기록상으로 남은 내시 묘역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일대의 판곡파(板谷派)와 계동파가 있다. 내시 족보인 『양세계 약보(養世系略譜)』에 의하면 1488년 쌍문동 일대에 묘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1970년대 택지 개발을 하면서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기타 경기도 고양, 과천, 안성, 용인, 파주 등지에도 내시 묘역이 분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초안산 내시 묘군은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외동, 진관내동 등에 위치한 내시 묘역과 함께 조선 시대 중인 계층의 묘역 특성을 알려 주는 중요한 곳이다. 특히 후손이 없는 내시의 특성상 희귀한 계층의 묘이며, 간략한 구성 및 석물의 형태를 보이고 있어 중인 계층 묘제와 석물 연구의 기초 자료가 될 수 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관** 서울 초안산 분묘군과 초안산 내시 묘군의 차이점은? 2013.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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