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2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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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見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김우택 |
[정의]
고려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견주(見州)는 원래 고구려의 매성군(買省郡)이었으나,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하여 757년(경덕왕 16)에 내소군(來蘇郡)이라고 고쳤다. 그리고 고려 시대에 들어와 지명이 견주로 바뀌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898년(효공왕 2) 2월에 궁예(弓裔)가 휘하 장수인 왕건(王建)을 정기대감(精騎大監)으로 삼아 이 지역을 공략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는 견주 일대가 일찍부터 궁예~왕건으로 이어지는 세력의 판도에 포함되었음을 보여 준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지리지 신라 한주 내소군 항목에 따르면 “내소군은 본래 고구려 매성현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견주이다. 영현이 둘이었다. 중성현(重城縣)은 본래 고구려 칠중현(七重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적성현(積城縣)이다. 파평현(波平縣)은 본래 고구려 파해평사현(波害平史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도 그대로 쓴다”라 하였다.
『고려사(高麗史)』 지리지 양광도 남경유수관 양주 항목에 따르면, 견주는 “본래 고구려의 매성군으로, 신라 경덕왕이 고쳐 내소군으로 삼았다.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고쳤으며, 현종(顯宗) 9년에 내속(來屬)하였다.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다”라 하였다. 그리고 지리지 왕경 개성부(王京開城府) 항목에서는 1069년(문종 23)에 양광도(楊廣道)에 속해 있던 견주를 경기(京畿)로 소속시켰다고 기록하였다. 또한 『고려사』 병지(兵志) 참역(站驛)조에는 견주의 소속으로 녹양역(綠楊驛)이 기재되어 있으며, 마정(馬政)조에는 견주의 목장으로 상자원(常慈院)이 적혀 있다.
[내용]
견주는 고구려의 매성군에서 신라의 내소군으로, 그리고 고려 시대에 견주로 변경된 명칭이다. 1018년(현종 9) 양주에 속하였다가, 1069년 경기에 속하게 되었음을 볼 때, 수도 개성의 배후지로서의 중요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견주에는 녹양역과 목장이 있어 교통 및 군사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변천]
초기부터 고려의 영역에 편제된 견주 지역은 1018년 양주에 속하였으며, 5도 양계 제도가 시행되면서 양주[견주 포함]는 양광도에 편입되었다. 이후 견주는 조선 시대에 들어서 양주목(楊州牧)의 영역으로 편입되는데, 조선 시대의 양주목은 고려 시대의 남경[양주] 영역 중 조선 시대 한성부의 영역으로 포함되지 못한 지역, 그리고 견주·풍양현·사천현 등의 영역으로 새롭게 구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