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A030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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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마을/마을 이야기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용 |
[정의]
마가들수리조합의 산증인 김선린
[다리목 마을의 생계 터전 마가들]
다리목 마을 마가들은 총 600정보에 이를 정도로 광활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웃하는 신당과 강림, 논공 등의 마을과 공유하지만, 다리목 마을이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생계의 터전으로 통한다.
제방 공사와 경지 정리가 되기 전에는 홍수 시의 낙동강 범람과 한발의 경우 농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일부 땅에서 밭작물을 재배하는 정도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곳곳에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치기도 했다. 굴곡의 야산 지형에다 숲이 우거져 늑대를 비롯한 야생의 동물들도 서식하여 혼자 다니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일제는 동양 척식 회사를 동원하여 전체 ¼이나 되는 땅을 사들여 콩이나 육도(陸稻), 보리 등의 농사를 장려하였다. 일제 패망 후에는 적산 토지가 됨으로써 분배 농지 제도에 의해 소작하던 사람들이 일정 액수를 상환하고 이를 소유하게 되었다.
마가들은 1960년 초 낙동강 제방 공사와 경지 정리 사업 등을 통해 벼농사가 가능해짐으로써 옥토로 변하였다. 다리목 마을만 해도 이전에는 사철 쌀을 섞어먹을 수 있는 집이 300호 중에서 열 집이 채 되지 않던 곤궁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벼농사와 시설 재배 2모작이 가능해져 부촌으로 변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황무지를 옥토로 바꾼 제방 공사와 경지 정리를 통한 수리(水利) 관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6.25 참전 용사로 2개의 무공 훈장도 받고]
다리목 마을 토박이 김선린(87세)은 평생 동안 마을의 생계 터전 마가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살아왔다. 그는 1930년 4남 중 장남으로 태어나 군 복무 시기를 제외하면 고향에서 붙박이로 살아왔다.
1950년 6.25 전쟁 때는 금계산 계곡과 대구 등지로 피난을 다녔다. 대구 피난지에서는 급박한 전세의 와중에서 보안대에 피검되기도 했는데, 당 해 9월 자진해서 참전하였다. 대구 남산 초등 학교에 집결한 후 경산 동부 초등 학교에서 1주일간 군사 훈련을 받았다. 이후 곧바로 포항 형산강 전투에 투입되어 아군의 절반이 희생되는 와중에서 용케도 살아남았다.
그는 북진하여 함경남도 삼수갑산(三水甲山) 지역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중공군 개입으로 흥남 부두에서 철수하여 강원도 묵호항에 내렸다. 그 과정에서 많은 전투를 경험하고 전과도 올려 무공 훈장을 두 개나 받았다.
[새마을 운동과 마을 발전을 위한 노력]
그는 장남으로 결혼하고 부모를 봉양하며 다리목 마을 발전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해왔다. 30세를 전후해서는 다리목 마을 청년회 총무와 이장으로 마을 안길과 농로 확장 등 새마을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장 재직 시에는 유치 위원회 총무까지 맡아 마을에 금계 초등 학교를 설립하는 데도 큰 역할을 다하였다. 또한 마을 원로들의 의견을 받들어 옥연지(玉蓮池)로부터 농수(農水)를 대는 수로 건설과 농지 정리 사업 등에도 적극 참여함으로써 마을 근대화에도 앞장섰다.
[평생을 마가들의 농사를 돕기 위해 노력]
그는 일찍부터 관내 수리(水利) 조합에 들어가 평생 동안 다리목 마을 마가들의 농사를 돕는 데 노력해 왔다. 그가 최초 몸담았던 달령 수리 조합은 이후 달창 수리 조합, 달성 농지 개량 조합 등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한국 농촌 공사 달성 지사가 되었다.
그는 1960년부터 추진된 낙동강 제방 공사 현장의 관리자로 참여하여 마가들의 농지를 보전하는 데 힘써 왔다. 마가들 경지 정리와 수로 및 양수 시설 확충 사업에도 힘을 쏟음으로써 농민들이 마음 놓고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도왔다. 다리목 마을 마가들이 황무지에서 지금의 옥토로 바뀐 것은 이러한 그의 노력 덕분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변화상을 이야기하는 그의 말과 표정이 유난히 맑고 밝다.
“낙동강 제방 쌓고 이 마을은 생활력이 엄청 좋아졌어요. 동네가 살은 택이지요. 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부자 됐습니다.”(김선린)
[정보 제공자]
김선린(남, 1930년생, 대구 광역시 달성군 옥포면[현 옥포읍] 교항리 다리목 마을 전 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