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14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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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湖集 |
영어공식명칭 | Donghojip |
이칭/별칭 | 『동호 문집(東湖文集)』,『동호 선생 문집(東湖先生文集)』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보라 |
[정의]
조선 후기 달성에 은거한 학자 이서의 시문집.
[저자]
이서[1566~1651]의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이직(以直), 호는 동호(東湖)이다. 아버지는 진천 현감 이홍우(李弘宇)이며, 어머니는 진주 강씨(晉州姜氏)로 동부참봉 강개(姜漑)의 딸이다.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했으나, 광해군 때 정구가 권신의 배척을 받아 향리로 돌아가자 벼슬에 뜻을 버리고 성주에서 스승과 함께 학문을 강론하면서 송대 유학자들의 예설(禮說)을 담은 『오선생 예설(五先生禮說)』을 편집하였다. 1620년(광해군 12) 정구가 세상을 떠나자 심상(心喪) 3년을 입고 회연 서원(檜淵書院)과 비각을 세우는 한편, 『한강집(寒岡集)』을 간행하였다.
1626년(인조 4) 사축서 별제(司畜署別提)에 임명되고 이듬해에 일어난 정묘호란에 임금을 호위한 공로로 6품에 승진하였다. 이어 얼마 뒤 활인서 별제와 의금부 도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만년에는 달성군 논공읍 삼리리 승호(承湖)에 집을 지어 제자들을 훈도(薰陶)했다. 승호에서 후진 교육에 힘쓰는 한편, 정구의 『한강 언행록(寒岡言行錄)』을 편집하였다. 사후에 문인들이 ‘덕요 선생(德耀先生)’이라 칭하였으며 스승·아버지 등과 더불어 성주의 회연 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동호집(東湖集)』이 있다.
[편찬/간행 경위]
『동호집』은 간행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가장(家藏)되어 오다가 이서의 6세손 이부운(李復運)이 가장 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편차한 후, 이서의 6세손인 이섭운(李燮運)이 편집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헌종 연간에 목판(木板)으로 간행된 것으로 추측된다. 권두에 정종로(鄭宗魯)와 유치명(柳致明)이 쓴 발문이 있다 . 『동호 문집(東湖文集)』, 『동호 선생 문집(東湖先生文集)』이라고도 불린다.
[형태/서지]
목판본 3권 2책으로 되어 있다.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에 계선(界線)이 있으며, 내향 이엽 화문 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크기는 세로 31.4㎝, 가로 21.7㎝이며, 반곽은 세로 21.2㎝, 가로 15.8㎝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국립 중앙 도서관, 고려 대학교 도서관, 연세 대학교 학술 정보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권1에 시(詩) 49수, 소(疏) 1편, 서(書) 15편, 축문(祝文) 1편, 제문(祭文) 10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2에는 갈문(碣文), 묘표(墓表 2편, 묘지명(墓誌銘) 1편, 잡저(雜著) 3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3은 부록으로 만사(輓詞), 제문(祭文), 가장(家狀)과 부록(裒錄)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의 「청종사남명선생소(請從祀南冥先生疏)」는 조식(曺植)의 문묘 배향을 주청한 글이다. 서(書)는 주로 학문과 훈고(訓詁)에 대한 논답인데, 「상한강정선생품목(上寒岡鄭先生稟目)」은 예설(禮說)로서 대부분 상례(喪禮)에 있어서의 의례(疑禮)·변례(變禮) 등에 대하여 질문한 것이다. 잡저의 「한강 선생 언행록(寒岡先生言行錄)」은 정구의 일상 언행을 기록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