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9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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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守義 |
영어공식명칭 | Park Suu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여성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박수의(朴守義)[?~?]는 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지금의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즈음 중국 푸우쑹[撫松縣]에서 조직된 지린성 군정서(軍政署) 부속 기관인 흥업단(興業團)에 전라남도 장성 출신의 이만준(李萬俊)과 이재술(李再述)을 통해 가입하였다. 박수의는 흥업단의 유일한 여성 단원이었다. 1922년 4월 하순 이만준의 지시로 홍종락(洪鍾洛), 이재술 등이 경상북도 봉화 지역 자산가를 대상으로 군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할 때,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권총 2정과 실탄 47발을 이재술 일행에게 비밀리에 전달하였다. 홍종락은 일단의 사고로 중도에서 탈락하고, 대신 김우창(金佑昌)이 1922년 5월 27일 이재술과 함께 대구를 출발하여 봉화로 향했다. 그러나 이재술 일행은 자동차로 봉화로 이동하던 중 자신들의 활동을 눈치 챈 경상북도 경찰부에 의해 경상북도 군위에서 체포되었다. 박수의는 1922년 11월 말 이규형(李圭亨)과 함께 체포되었다. 1934년 8월 수해로 피해를 입은 이재민에 기증할 금품을 들고 『동아 일보』 대구 지국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