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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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孫遴 |
영어공식명칭 | Son In |
이칭/별칭 | 계진,문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순한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도 대구 도호부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일직(一直). 자는 계진(季進), 호는 문탄(聞灘). 할아버지는 참봉(參奉) 손세경(孫世經)이고, 아버지는 손덕운(孫德雲)이다. 부인은 약목 유씨(若木柳氏)와 달성 서씨(達城徐氏)이다. 손인의 조상은 안동 일직현에 거주하였는데, 그의 6대조인 손관(孫寬) 때 밀양으로, 할아버지 손세경이 대구 수성으로 이주하였다. 손세경의 입향 경위는 명확히 알수 없으나, 달성 서씨 서진원(徐震元)의 딸과 혼인하면서 처향을 따라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활동 사항]
손인(孫遴)[1566~1628]은 1600년[선조 33] 향시에 합격하였고, 1606년 식년 문과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1611년[광해군 3] 정인홍(鄭仁弘)은 이언적(李彦迪)과 이황(李滉)을 비방하고 문묘 배향에 부당함을 격렬하게 논쟁하게 된다. 이때 손인은 종질인 손처눌(孫處訥)과 「부정 척사 통문(扶正斥邪通文)」을 작성하여 도내 사림을 규합하여 정인홍의 상소에 대한 성토문을 올리게 된다. 1618년 예문관 봉교, 1623년 예조 좌랑 겸 춘추관 기사관, 병조 좌랑, 단성 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정묘호란 때 정경세(鄭經世)의 추천으로 의병장이 되어 활약하였다. 정묘호란이 끝난 후 향리로 돌아가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문탄집(聞灘集)』이 있다. 4권 2책 목판본으로 간행 연대는 미상이다. 그의 후손 손정환(孫廷煥)이 유고를 정리하여 출간하였다. 서문은 장석우(李彙寧)가 썼고, 발문은 이휘령(李彙寧)이 작성하였다.
[묘소]
손인의 묘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위치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에 위치한 봉산 서원(鳳山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