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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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龍河 |
영어공식명칭 | Kim Chungseon |
이칭/별칭 | 국명(國明),남호(南湖)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광우 |
[정의]
개항기 달성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사성(賜姓) 김해(金海). 자는 국명(國明), 호는 남호(南湖). 임진왜란 때의 항왜장(降倭將) 김충선(金忠善)이 9대조로, 증조할아버지는 김한보(金漢輔)이고, 할아버지는 김양준(金養俊)이다. 아버지는 김정곤(金定坤)이며, 어머니는 이민열(李敏列)의 딸 재령 이씨(載寧李氏)이다. 부인은 김장(金墻)의 딸 김해 김씨(金海金氏)이다.
[활동 사항]
김용하(金龍河)[1850~1920]는 어릴 때부터 품성이 강명(剛明)하였으며, 15세의 나이에 경사(經史)를 통달하였다고 한다. 1874년(고종 11)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876년(고종 13) 아산 현령(牙山縣令)으로 부임하였다. 1882년(고종 19) 군사마(軍司馬)를 지냈고, 1884년(고종 21) 인천부 판관(仁川府判官)에 임명되었으나 부모의 병환으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1885년 집안사람들과 의논하여 녹동재(鹿洞齋)를 건립하였다. 1892년(고종 29) 나라에서 충신·효자·열녀를 천거하라는 조서를 내리자 김용하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9대조 김충선을 현양하기 위해 삼도(三道) 진사 29인과 유생 93인의 천장(薦狀)을 가지고 상경하여 이조(吏曹)에 납부하였다. 이로써 김충선은 증직되었으며, 부조전(不祧典)을 허락받게 되었다. 이에 1914년 김충선의 부조묘(不祧廟)를 건립하였고, 또한 유계(儒契)를 결성한 뒤 실기(實紀)를 간행하였다.
[묘소]
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율곡(栗谷)에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