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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793
한자 朴基正
영어공식명칭 Park Gijeong
이칭/별칭 일여(一如),벽오(碧梧)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48년연표보기 - 박기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68년 - 박기정 장릉 참봉 임명
활동 시기/일시 1776년 - 박기정 용궁 현감 부임
활동 시기/일시 1784년 - 박기정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786년 - 박기정 홍문관 교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787년 - 박기정 접위관 임명
활동 시기/일시 1788년 - 박기정 북평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791년 - 박기정 영월 부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793년 - 박기정 사간원 대사간 임명
활동 시기/일시 1796년 - 박기정 『장릉사보』 편찬
활동 시기/일시 1799년 - 박기정 병조 참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799년 - 박기정 진하사 겸 사은사 부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799년 - 박기정 황해도 관찰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800년 - 박기정 황해도 관찰사 파직
몰년 시기/일시 1801년연표보기 - 박기정 사망
출생지 하빈현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묘소|단소 박기정 묘 -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덕련리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순천
대표 관직|경력 황해도 관찰사

[정의]

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일여(一如), 호는 벽오(碧梧). 증조할아버지는 사복시 정(司僕寺正)을 지낸 박명정(朴命鼎)이고, 할아버지는 증이조 참의(贈吏曹參議) 박성원(朴聖源)이다. 아버지는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를 지낸 박광주(朴光冑)이며, 어머니는 감찰(監察)을 지낸 정운채(丁運采)의 딸 정부인(貞夫人) 해주 정씨(海州丁氏)이다. 부인은 민효석(閔孝錫)의 딸 정부인 여흥 민씨(驪興閔氏)이다.

[활동 사항]

박기정(朴基正)[1748~1801]은 1748년(영조 23) 대구도호부 하빈현 묘골[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서 출생하였다. 1768년(영조 44) 음보로 장릉 참봉(長陵參奉)에 임명되었고, 1776년(정조 즉위) 용궁 현감(龍宮縣監)으로 부임하였다. 하급 관직과 수령으로 있으면서 태만하지 않았다고 한다. 1784년(정조 8)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이후 삼사(三司)의 요직을 거쳐 1786년(정조 10)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가 되었는데, 주위로부터 문장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았다.

1787년(정조 11) 일본 사신을 맞이하는 접위관(接慰官)에 임명되었으며, 1788년에는 북평사(北評事)로 부임하였다. 북평사 재임 시절 치적이 있어 거사비(去思碑)가 세워졌다고 한다. 1791년(정조 15) 왕명으로 단종(端宗)의 무덤인 장릉(莊陵)의 배식단(配食壇)을 수축하고, 자규루(子規樓)를 중수하였다. 박기정은 고유(告由)를 하면서 자신이 사육신(死六臣) 충정공(忠正公) 박팽년(朴彭年)의 주손(冑孫)임을 밝혔다. 이에 정조(正祖)가 박기정을 영월 부사에 임명하였다. 사육신의 후손 중 유일하게 박팽년의 후손만이 제사를 치르는 반열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기정은 영월 부사로 있으면서 장릉과 박팽년을 배향한 창절 서원(彰節書院) 보수, 그리고 단종(端宗)과 충신들을 추숭하는 각종 현양 사업을 진행하였다. 「관풍헌 중수기(觀風軒重修記)」, 「장릉 영천비(莊陵靈泉碑)」 등이 박기정에 의해 쓰여졌으며, 이때 배견정(拜鵑亭)도 박기정이 건립하였다.

1793년(정조 17) 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에 임명되었으며, 승지와 대사간을 거쳐 1799년(정조 23) 병조 참판이 되었다. 이 해에 진하사 겸 사은사(進賀使兼謝恩使)의 부사(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조선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황해도 관찰사로 부임하였다. 황해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사재를 털어 소실된 감영을 복구하였으며, 왕명을 받들어 태조가 말 달리기를 하던 곡산(谷山)의 치마기(馳馬基)를 중수하고 비를 세웠다. 그러나 1800년 감영의 사옥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민폐를 끼쳤다는 이유로 파직당하였다. 1801년(순조 1) 세상을 떠났는데, 왕이 크게 슬퍼하면서 장구(葬具)를 하사하였다.

[학문과 저술]

1796년(정조 20) 왕명으로 이의준(李義駿), 이서구(李書九), 성대중(成大中)과 함께 『장릉사보(莊陵史補)』를 편찬하였다. 이 책은 단종의 사적을 엮은 것으로, 기존에 편찬된 『노릉지(魯陵志)』와 『장릉지(莊陵志)』를 보완한 것이다.

[묘소]

묘는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덕련리 조동(鳥洞)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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