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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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玄風靑年同盟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 강점기 달성군 현풍 지역의 청년 운동 단체.
[개설]
1930년 5월 현풍 청년회가 현풍 청년 동맹으로 조직체를 변경하여 청년 운동을 전개하였다.
[설립 목적]
현풍청년동맹은 달성 청년 동맹 결성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문화 운동에서 사회 운동으로 전환해 나가고자 하였다.
[변천]
현풍 청년회가 현풍청년동맹으로 조직체를 변경하여 결성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현풍청년동맹은 1930년 8월 7일에 정기 총회를 개최하여 임원을 선정하고 향후 활동 방향을 설정하였다. 청년 동맹 가맹, 운동 방침 수립할 것, 청년 동맹 여자부 독립의 건, 소인극 개최, 도서부 설치 등이었다. 현풍청년동맹의 임원은 집행 위원장 이상규, 출판 교양부 곽수범, 농민부 곽○○, 소년부·운동부 김판석, 여자부 박○화 등이었다. 집행 위원은 이들 임원을 포함하여 정경덕, 김봉도, 김봉학, 이점○, 장학천, 강상문 등이 선출되었다.
1930년 평양 고무 공장에서 파업이 발생하여 전 조선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평양 고무 공장의 파업은 임금 인하에 맞서 2,000여 명의 노동자가 봉기한 사건이었다. 이때 현풍청년동맹은 평양 고무 공장의 파업을 지지하고, 성금을 모아 송금하거나 격려문을 보내는 지원 활동을 펼쳤다. 이에 일제 관헌은 현풍 청년 동맹이 비합법적 불온 행동을 했다며, 소인극 개최뿐 아니라 아예 집회 허가를 내어 주지 않는 따위의 탄압 조치를 강력하게 취하였다. 또한 일제는 평양 고무 공장 노동자의 파업을 지원한 현풍 청년 동맹원들을 검거하는 조치를 감행하였다. 그리고 현풍 청년 동맹원을 대구 상업 학교 비밀 결사와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씌워 검거하고, 관련자의 집을 압수 수색하는 따위의 강도 높은 탄압을 계속하였다.
[의의와 평가]
현풍청년동맹은 명실상부한 달성군의 가장 대표적인 사회 운동 단체로서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