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14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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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挽徐訓導 |
영어공식명칭 | Poems for Death of Seo Hundo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영호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491년 - 「만서훈도」이언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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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553년 - 「만서훈도」이언적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631년 - 「만서훈도」간행 |
배경 지역 | 「만서훈도」 -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
성격 | 애제류|만사 |
작가 | 이언적 |
[정의]
조선 전기 문신이며 학자인 이언적이 출생지가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팔공산 일대로 추정되는 서괄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한시.
[개설]
이언적(李彦迪)[1491~1553]은 경상북도 경주 출신으로 본관은 여강(驪江)[여주(驪州)]이다. 초명은 이적(李迪)이었으나 중종의 명으로 언(彦)자를 더하였다.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자계옹(紫溪翁)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정립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성리학의 방향과 성격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주희(朱熹)의 주리론적 입장을 정통으로 확립하여 이황(李滉)에게 전해주었다.
서괄(徐适)에 대한 자세한 인물 정보가 보이는 곳은 없다.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고향이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팔공산 일대로 추정된다. 서괄은 경주 일대에서 향교의 훈도를 지낸 것으로 보인다. 만사 내용으로 보면 뜻밖의 변고를 당해서 죽은 듯하다.
[구성]
「만서훈도(挽徐訓導)」는 총 두 수(首)의 오언율시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
「만서훈도」[서 훈도 괄의 만사]의 전문이다.
제1수
앵입신년어(鶯入新年語)[꾀꼬리는 새봄을 노래 부르고]/화개만고지(花開滿故枝)[꽃들은 옛 가지에 만개했으니]/
물쇠환유일(物衰還有日)[꽃과 새는 돌아올 날이 있지만]/인서반무기(人逝返無期)[사람은 가면 다시 올 수 없는 법]/
포원중천암(抱怨重泉暗)[캄캄한 구천에서 원한 품으니]/소혼제우비(銷魂諸友悲)[여러 벗들 슬픔에 넋을 잃었네]/
행수리화혹(行修罹禍酷)[품행 바른 사람이 화를 당하니]/천도막난지(天道邈難知)[천도는 아득하여 알 수 없어라]
제2수
무망화난측(無妄禍難測)[뜻밖에 알 수 없는 화를 당하니]/규천천막연(叫天天漠然)[하늘을 불러 봐도 대답이 없네]/
친붕심공파(親朋心共破)[친지와 벗들 마음 모두 찢기고]/행로체환련(行路涕還漣)[길 가는 사람들도 눈물 흘리네]/
운참공산로(雲慘公山路)[공산 길에 어두운 구름 덮이고]/풍비이수변(風悲二水邊)[두 물가에 슬프게 바람이 부네]/
평생유상처(平生遊賞處)[평소에 노닐면서 감상한 곳에]/유유월연연(唯有月娟娟)[아름답고 환한 달만 비추는구나]
[특징]
「만서훈도」는 첫 번째 시는 짝수 구(句)에 지(支)계열의 운자를, 두 번째 시는 짝수 구에 선(先) 계열의 운자를 배치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만서훈도」는 전체적으로 서정적인 정서가 많이 투영되어있다. 당시풍(唐詩風)[당나라 시풍]의 취향이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