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6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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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裵哲 |
영어공식명칭 | Bae Cheol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 유격전을 지도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배철은 1912년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1928년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동맹휴학 사건으로 정학처분을 받았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때 송도고등보통학교 투쟁위원회 위원장이 되어 투쟁을 벌이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4개월간 구금되는 탄압을 받았다. 1931년 일본 니혼대학[日本大學]에서 유학하던 중 일본공산청년동맹에 가입하고, 1932년 10월에 일본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33년에 잠시 귀국하였다. 1935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1940년 일제 당국에 의해 검거되었다.
일제 패망 후인 1945년 10월 재일조선인연맹 조직부장에 선임된 이래 1946년에 귀국하였다. 같은 해인 1945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상임위원 및 서울시지부 부위원장과 사회정책연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47년 2월 재일조선인연맹을 대표하여 민주주의민족전선 지방선거대책위원회 위원으로 선정되었다. 같은 해인 1947년 4월 미군정청이 재일동포 군정청 연락사무소를 폐지하려 하자 거족적인 반대 투쟁을 벌이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1948년 남조선노동당 경상북도위원장이 되어,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 근거지를 둔 유격대를 이끌었다. 한국전쟁 때인 1950년 7월 말 남로당경북도당 위원장에 있으면서 이끈 유격대는 대구광역시 동구의 동촌비행장을 이틀간 점령하였다. 1951년 4월부터 조선인민군 총사령부 작전국 소속 유격지도처를 관장하는 책임자가 되었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연락부장을 맡았다. 1953년 8월 북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 전복 음모와 반국가적 간첩 테러 및 선전선동행위[이른바 이승엽 간첩사건]에 연루되어 개정된 군사 재판에서 사형과 재산몰수를 언도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