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5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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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東輔[東區] |
영어공식명칭 | Choe Dongbo |
이칭/별칭 | 동보(東寶),자익(子翼),우락재(憂樂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인진 |
[정의]
임진왜란 때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출신으로 왜적을 물리친 의병.
[개설]
최동보(崔東輔)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초명은 동보(東寶), 자는 자익(子翼), 호는 우락재(憂樂齋)이다.
[가계]
최동보는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 최해(崔海)는 발포만호(鉢浦萬戶)를 지냈고, 할아버지 최종옥(崔宗沃)은 감찰(監察)을 지냈으며, 아버지 최겸(崔謙)은 효행으로 이조좌랑에 증직(贈職)되었다. 어머니는 진사 노수(盧遂)의 딸인 광산노씨(光山盧氏)이다. 부인은 전한(全僩)의 딸인 옥산전씨(玉山全氏)와 성입(成立)의 딸인 창녕성씨(昌寧成氏)인데 슬하에 세 아들 최여원(崔汝瑗), 최여호(崔汝琥), 최여민(崔汝珉)과 안충한(安忠漢)에게 출가한 딸을 두었다.
[활동 사항]
최동보는 일찍부터 퇴계 이황(李滉)의 문인이었던 외할아버지 노수(盧遂)에게 배워서 사서(四書)와 성리학(性理學) 관련 여러 책에 능통하였다. 특히 『대학』을 좋아하여 많이 읽었으며 행의(行誼)가 있었다. 젊을 때 효행으로 조정에 알려져서 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중부(仲父) 최인(崔認), 숙부(叔父) 최계(崔誡)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서 많은 전공을 세웠으나 조정에 알려지지 않았다. 만년에 영천군 창수면으로 퇴거하여 우락재(憂樂齋)를 지어서 생을 보내었다.
[묘소]
최동보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군 치산면 오복곡(五福谷)에 있는데 묘갈명은 정헌(定軒) 이종상(李鍾祥)이 지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