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5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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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宗文[東區] |
영어공식명칭 | Lee Jongmun |
이칭/별칭 | 학가(學可),낙포(洛浦)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황동권 |
[정의]
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일대에서 공산의진군 하빈현 대장을 맡은 의병장.
[가계]
이종문의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학가(學可), 호는 낙포(洛浦)이다. 고려 개국공신인 태사(太師) 이도(李棹)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이윤광(李允光), 할아버지는 이필(李佖), 아버지는 이경두(李慶斗),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로, 윤황(尹滉)의 딸이다. 부인은 옥산전씨(玉山全氏)로, 전경창(全慶昌)의 딸이다. 2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이지영(李之英)·이지화(李之華)이며, 딸은 윤좌벽(尹左辟)에게 시집갔다.
[활동 사항]
이종문은 1566년(명종 21)에 태어나 1588년(선조 21)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7월 7일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팔공산 부인사에서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 낙애(洛涯) 정광천(鄭光天), 태암(苔巖) 이주(李輈) 등과 향회를 열어 공산의진군(公山義陣軍)을 결성하고 하빈현(河濱縣) 대장을 맡았다. 이때 이종문의 집안은 의병을 위해 많은 군량과 군수 물자를 제공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 시관(試官)의 천거로 제용감 직장을 거쳐 사헌부 감찰로 승진하였고, 이후 1610년(광해군 2) 삼가 현감(三嘉縣監)에, 1612년(광해군 4) 비안 현감(比安縣監)에, 1620년(광해군 12) 군위 현감(軍威縣監)에 제수되었다. 1638(인조 16) 6월 15일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73세였다.
한편, 1604년(선조 37)에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낙동강 가에 하목정(霞鶩亭)을 지었는데, 인조가 능양군 시절 하목정에 유숙한 적이 있었다. 이런 인연으로 인조가 왕위에 오른 뒤에 이종문의 장자 수월당(水月堂) 이지영(李之英)에게 ‘하목정(霞鶩亭)’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였다. ‘하목(霞鶩)’은 「등왕각서(滕王閣序)」에서 “지는 노을은 외로운 따오기와 나란히 날고, 가을 강물은 끝없는 하늘과 한 색이다.[낙하여고목제비(落霞與孤鶩齊飛) 추수공장천일색(秋水共長天一色)]”라고 한 데서 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