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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20541
한자 蔡泳
영어공식명칭 Chae Y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황동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지 채영 출생지 -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
거주|이주지 채영 은거지 -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팔공산지도보기
묘소|단소 채영 묘소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성격 문인
성별 남성
본관 인천

[정의]

고려후기부터 조선전기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서 활동한 문인 학자.

[가계]

채영의 본관은 인천(仁川)으로, 시조는 채선무(蔡先茂)이다. 증조는 채윤신(蔡允臣), 조부는 채원길(蔡元吉), 부친은 채귀하(蔡貴河), 모친은 달성서씨(達成徐氏)로, 서진(徐晉)의 딸이다. 채기(蔡耆)와 채륜(蔡倫) 두 아들을 두었다.

[활동 사항]

채영은 대구 후동(後洞)[지금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에서 태어났다. 진사로 여러 차례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부친의 명에 따라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켜 출사하지 않았다. 그의 부친 채귀하(蔡貴河)는 조선 개국에 반대하여 관직을 버리고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했던 ‘두문동 72현’ 중에 한 사람이다. 이후 채영은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자락 미대동에 터를 잡고 살았는데, 채영의 후손들이 번창하여 많은 명현을 배출하고 대구광역시·경상북도 인천채씨의 맥을 형성하였다.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은 「조봉대부군자소감채공묘갈명(朝奉大夫軍資少監蔡公墓碣銘)」에서 채영의 공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루선이육기근혜(累善而毓其根兮)[선을 쌓아 그 뿌리 길러내었고]/유여이부후혜(遺餘而阜後兮)[경사를 남겨 후손 번창시켰네]/

명이정지혜(銘而貞之兮)[사적을 비에 새겨 세워서]/시이위불후혜(是以爲不朽兮)[이것으로 불후 계획 삼는다네]

[묘소]

채영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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