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4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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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西湖洞 碑石群 |
영어공식명칭 | Stones of Seoho-dong, Daeg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안심로49길 98[서호동 14-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 |
집필자 | 배성혁 |
건립 시기/일시 | 1837년 5월 - 대구 서호동 비석군 현감 심후수준 청덕선정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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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914년 4월 - 대구 서호동 비석군 현감 심원택 애민덕정비 건립 |
건립 시기/일시 | 1928년 - 대구 서호동 비석군 면장 김문한 양야지 수선기념비 건립 |
현 소재지 | 대구 서호동 비석군 - 대구광역시 동구 안심로49길 98[서호동 14-1] |
성격 | 기념비 |
관련 인물 | 심수준|김문한|심원택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현감 심후준 청덕선정비[전체 높이 220㎝, 너비 117㎝]|현감 심원택 애민덕정비[농대 규모 가로 66cm, 세로 61cm, 높이 45cm]|면장 김문한 양야지 수선기념비[비신 규모 높이 100cm, 너비 39cm, 두께 14cm]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서호동에 있는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현감과 면장의 기념비.
[개설]
조선시대 말기부터 일제강점기는 최하급 관리인 현감이나 면장들의 기념비가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다. 전국적으로 유사한 형태의 비들이 유행하고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에 있는 대표적 비로는 현감 심후수준 청덕선정비(縣監沈侯壽浚淸德善政碑), 현감 심후원택애민덕정비(縣監沈侯元澤愛民德政碑), 면장 김문한 양야지수선기념비(面長金文漢陽也池修繕記念碑) 등 3기 비가 있다.
[건립 경위]
현감 심후수준 청덕선정비는 하양 현령으로 재임하였던 심수준(沈壽浚)의 청렴결백함과 선정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정유년(丁酉年)[1837년 또는 1897년] 5월에 세웠다.
현감 심후원택 애민덕정비는 하양현감으로 재임했던 심원택(沈元澤)이 백성을 사랑하고 덕정을 베풀었음을 기리기 위해 갑인년(甲寅年)[1914년] 4월에 건립하였다.
면장 김문한 양야지수선기념비는 면장 김문한(金文漢)이 양야지(陽也池)를 수선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1928년에 세운 것이다.
[위치]
대구 서호동 비석군은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안심 3·4동 주민센터 주차장 북편 화단에 있다.
[형태]
현감 심후수준 청덕선정비는 비신[비문을 새긴 비석의 몸체]과 이수[비석 머리에 뿔 없는 용을 새긴 형태]를 하나의 자연석으로 만들고 비신 부분에는 장방형[직사각형]으로 파서 내부에 비문을 새겼다. 크기는 전체 높이 220㎝, 너비 117㎝이고, 비신은 높이 137㎝, 너비 89㎝, 두께 37㎝ 정도이며, 이수는 종형으로 너비 89㎝, 높이 69㎝ 정도이다.
현감 심후원택 애민덕정비는 장방형 농대[비신을 받쳐 놓은 돌] 위에 비신을 올리고 그 위에 팔작지붕형태의 가첨석[지붕돌]을 올린 형태이다. 농대의 규모는 가로 66㎝, 세로 61㎝, 높이는 45㎝ 정도이다. 비신은 높이 118㎝, 너비 40㎝, 두께 18㎝ 정도이며, 가첨석은 높이 46㎝, 너비 79㎝, 두께 62㎝ 정도의 규모이다.
면장 김문한 양야지 수선기념비는 장방형의 농대 위에 상부를 반원형으로 처리한 비신을 올린 형태이다. 비신의 규모는 높이 100㎝, 너비 39㎝, 두께 14㎝이며, 농대는 너비 61㎝, 두께 42㎝, 높이 25㎝ 정도이다.
[금석문]
현감 심후수준 청덕선정비의 비신부 중앙에는 「현감심후수준청덕선정비(縣監沈侯壽浚淸德善政碑)」, 상부 좌측에는 건립 시기인 「정유오월(丁酉五月)」, 하부에는 「심전자혜(心專字惠) 지일청검(志壹淸儉) 일편전덕(一片鐫德) 만세흠염(萬歲欽艶)」이라 새겨져 있다.
현감 심후원택 애민덕정비의 비신에는 「현감심후원택애민덕정비(縣監沈侯元澤愛民德政碑)」라 새겨져 있다.
면장 김문한 양야지수선기념비의 비신에는 「면장김문한양야지수선기념비(面長金文漢陽也池修繕記念碑)」라 새겨져 있다.
[현황]
대구 서호동 비석군의 비들은 원래 위치는 정확히 모르며, 여러 곳에서 수습해 현재 위치로 옮겨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 서호동 비석군은 지방에서도 최하급 관리들의 기념비가 난무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사회 혼란상을 연구하는데 참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