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345 |
---|---|
한자 | 大邱達城聯合農民組合協議會[東區] |
영어공식명칭 | Union Farmers Association in Dalseong, Daegu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45년 10월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 설립된 농민 단체.
[설립 목적]
대구달성연합농민조합협의회의 결성 목적은 경북농민조합연맹 창립대회에서 채택된 결의사항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조직의 경우 전국 조직체계의 마련, 소작료 3·7제와 소작권 이동 반대, 농촌문화향상과 문맹퇴치 등을 주요 목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대구달성연합농민조합협의회의 경우도 유사할 것으로 판단된다. 대구달성연합농민조합협의회는 조직 강화를 꾀했는데, 위로는 도연맹과 전국조직의 결성에 기여하고, 아래로는 면 단위, 리 단위 조직을 갖추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변천]
대구달성연합농민조합협의회는 1945년 10월 말 동구의 해안면과 공산면을 포함한 달성군과 대구의 농민들이 연합하여 결성한 농민운동 조직이었다. 1945년 11월 27일부터 28일까지 이틀동안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동협의회를 비롯한 경북 각 군의 농민조합을 기반으로 하여 경북농민조합연맹 결성을 위한 창립대회가 열렸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달성연합농민조합협의회는 조직 활동, 농민 운동, 국가건설과 관련된 사회 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조직 활동은 전국적 차원에서 관통하는 체계적 농민운동 조직의 건설에 역점을 두었다. 농민 운동은 당면 과제로서 3.7소작료의 달성에서 궁극적 토지혁명을 통한 농민적 토지소유의 해결, 농민의 문화 향상과 문맹퇴치 활동 등에 중점을 두었다. 사회 활동은 좌익세력의 정치세력화, 모스크바삼상회의 지지, 미소공동위원회 성공적 개최 및 재개 등에 관심을 나타냈다. 또한 10월항쟁의 주요 기반이 되어 항쟁의 지속과 확산에 기여하였다.
[현황]
결성 당시 대구달성연합농민조합협의회의 주요 구성원은 고문 서영로, 채충식, 김선기, 위원장 상무상, 부위원장 곽수범 등이었으며, 부서로는 서기부, 선전부, 쟁의부, 조직부, 사업부 등 5부를 두었다. 이들 주요 간부들 중 고문은 일제강점기 대구지역 사회운동가들이었고, 위원장급은 일제강점기 학생운동을 전개한 주체들이었다.
1945년 12월에 열린 전국농민조합총연합회의 창립대회에서 경북농민조합연맹을 대표한 김동환의 보고에 따르면, 경상북도 256개 면에 222지부가 설치되고, 조합원은 29만 명에 달했다. 이에 동구의 해안면과 공산면에도 농민조합의 하부조직이 결성되어 일정한 규모의 조합원을 구성하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대구달성연합농민조합협의회는 해방 후 결성된 단체로 농민운동뿐 아니라 주요 과제인 국가건설 운동에도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