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3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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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朝鮮民主女性同盟 大邱市委員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설립 시기/일시 | 1947년 2월 20일 - 남조선민주여성동맹 대구시위원회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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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민주주의민족전선 대구시위원회 사무소 - 대구광역시 |
성격 | 여성운동 단체 |
설립자 | 우신실|이춘수 |
[정의]
1947년 2월 대구광역시에서 결성된 여성 단체.
[개설]
남조선민주여성동맹 대구시위원회(南朝鮮民主女性同盟 大邱市委員會)는 1947년 2월 20일 조선부녀총동맹 대구시위원회(朝鮮婦女摠同盟 大邱市委員會)의 명칭을 변경하여 설립한 여성운동 단체이다. 명칭 변경은 1947년 2월 10일부터 11일까지 서울 천도교당에서 대구 출신 정칠성(丁七星)[1897~1958]의 사회로 열린 ‘조선부녀총동맹 제2회 전국대회’에서 ‘조선부녀총동맹’을 ‘남조선민주여성동맹’으로 바꾼 것이 계기가 되었다.
[설립 목적]
남조선민주여성동맹 대구시위원회는 1947년 2월 20일 새로운 단결과 결심 아래 조선부녀총동맹 대구시위원회를 개칭하여 설립하였다. “새로운 단결과 결심”은 조선부녀총동맹 제2회 전국대회에서 결의된 “민주주의 조선 건설에 일대 추진력이 될 것”과 “북조선 민주여성동맹과 긴밀히 협의하여 여성해방을 추진할 것” 등을 의미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남조선민주여성동맹 대구시위원회는 1947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대구시위원회(民主主義民族戰線 大邱市委員會) 사무소에서 조선부녀총동맹 대구시위원회의 조직을 전환하여 활동을 개시하였다. 이때 동시에 명칭이 변경된 남조선민주여성동맹 경북도위원회도 민주주의민족전선 대구시위원회 사무소에 사무 공간을 마련하였다. 남조선민주여성동맹 대구시위원회는 민주주의민족전선 대구시위원회의 소속 단체로 활동하였다. 주요 구성원은 조선부녀총동맹 대구시위원회의 우신실(禹信實), 이춘수(李春壽) 등이었을 것이나 구체적인 조직 구성과 임원 명단은 확인이 어렵다.
남조선민주여성동맹 대구시위원회는 1946년 10월 항쟁으로 구금된 사람들의 석방과 사형 취소, 박헌영(朴憲永)[1900~1956] 체포령의 취소 등의 활동을 벌이며, 쌀의 안정적 배급과 테러 방지, 국대안(國大案) 반대운동 등의 활동을 벌였다. 또 1947년 3월 1일부터 3월 8일까지 남조선민주여성동맹이 추진하는 ‘부녀 해방 투쟁 주간’을 대구에서도 열고 민족과 부녀 해방을 연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3월 8일 국제무산부인데이를 맞이하여 기념식을 개최하였으며, 아울러 모스크바삼상결정안 총체적 지지를 표명하였다.
남조선민주여성동맹 대구시위원회는 1947년 4월 미군정 당국에 ‘남녀 동등권’ 법령의 실시를 요망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1947년 6월에는 민주주의민족전선 대구시위원회와 함께 미소공동위원회(美蘇共同委員會)의 속개를 위한 활동을 벌였고, 미소공동위원회 양측에 놋그릇을 포함한 경상북도의 명물을 선물로 제공하였다. 남조선민주여성동맹 대구시위원회는 1948년 3월 이후 남조선민주여성동맹의 ‘민주 독립 전취 정책’에 맞추어 국제연합 한국위원단의 방한과 단선단정(單選單政)을 반대하며 남북 협상을 지지하는 활동을 벌였다.
[의의와 평가]
남조선민주여성동맹 대구시위원회는 1947년 2월 조선부녀총동맹 대구시위원회를 개칭하여 여성 해방 운동을 계속 펼쳐 나가는 동시에 민주주의민족전선 대구시위원회를 비롯한 좌파의 정치 활동에 일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