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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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公設洗濯所 |
이칭/별칭 | 대구부영세탁소,대구부영공설세탁소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삼조 |
설립 시기/일시 | 1921년 3월 - 대구공설세탁소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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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대구공설세탁소 - 대구광역시 중구 시장북로 |
성격 | 세탁 시설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한인 세탁 시설.
[개설]
1920년대에 조선총독부는 한인이 위생 시설, 문화시설, 체육시설 등을 공립으로 설립하게 하여 문화통치를 선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특히 대구역 개통 이후 매년 대구 지역 인구가 폭증하면서 상하수도 시설, 세탁 처리 시설, 생활 시설 등의 절대적 부족은 대구 사회의 문제로 부각하였다. 한편, 대구부에서는 1920년대 초부터 도시 재정비 및 새로운 도시 조성을 시작하면서 위생 시설뿐 아니라 공공시설, 체육시설, 문화시설, 사회 시설 등을 도시계획 항목으로 선정하여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건립 경위]
한인들은 대규모 세탁 시설이 없는 상황에서 주로 도랑이나 하천 등의 오수를 이용하여 세탁하여 위생상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부는 한인의 대규모 세탁 시설에 투자하지 않았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구부는 통행에 편리한 장소, 수원이 확보되는 곳, 세탁물을 말리기 편한 곳을 선택하여 대구공설세탁소를 설치하였다.
[변천]
대구공설세탁소는 1920년대에 시장북통, 덕산정에 설치되었다. 첫 번째 대구공설세탁소는 1921년 3월 대구 시장북통[현 대구광역시 중구 시장북로]에 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설치되었다. 땅 991.7㎡[300평] 부유지에 길이 13칸, 폭 2칸의 수류(水溜)를 파고, 신천[대구천]의 물을 끌어와 사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가뭄으로 신천 물이 고갈되면 수돗물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두 번째 대구공설세탁소는 1922년 대구 덕산정[현 중구 덕산동]에 설치되었다. 덕산정은 대구 지역에서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살었던 대표적 장소였다. 1930년대가 되면 시장북통과 덕산정에 있었던 2개의 대구공설세탁소는 배수와 그 밖의 사정으로 폐지되었다. 그 후 1932년 3월 30일 대구 덕산정 측후소 아래에 대구공설세탁소 1개만을 설치하고 4월 6일부터 사용하도록 하였다.
[현황]
대구공설세탁소의 경비는 대구부의 경상비로 운영되었다. 1932년에는 38.87원, 1933년에는 36.90원, 1934년에는 379.25원, 1935년에는 474.53원, 1936년에는 502.00원이었다.
1943년 당시 대구공설세탁소 1일 평균 사용 인원은 약 650명에 달하였고, 연간 소요 경비는 500원 내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