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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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寅植 |
영어공식명칭 | Seo Insi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세윤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서인식(徐寅植)[1906~?]은 1906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일본 유학 중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에서 활동하였고, 대구에서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과 반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서인식은 1924년 3월 서울의 중앙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4월에 일본 도쿄[東京]의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学] 철학과에 입학하였다. 1928년 6월부터 12월까지 일본 도쿄 등지에서 조선공산당 일본총국 조직부 비서,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 도즈카[戶塚] 세포 조직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서인식은 1928년 12월 와세다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하였고, 1931년 조선공산당재건동맹 결성에 참여하여 전형위원 및 선전부 책임, 서기국원으로 선출되었다.
서인식은 1931년 7월 대구에서 하동 출신의 권대형(權大衡) 등과 함께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를 조직하였다. 권대형·조복금(趙福今) 등과 함께 발간한 기관지 『봉화(烽火)』와 『코뮤니스트』 등 출판물을 대구와 전국 각지에 배포하고 전매국(專賣局) 등 관공서나 고무공장 등에서 반일 선전과 동지 규합 활동을 전개하였다. 서인식은 1932년 3월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1933년 4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6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