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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109
한자 金基錫
영어공식명칭 Kim Kiseo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학 시기/일시 1928년 - 김기석 대구고등보통학교 재학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학생운동을 벌인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기석(金基錫)[?~?]은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8년 일본인 교사의 이순신(李舜臣) 폄하 발언을 계기로 김성칠(金聖七)·정소수(鄭小秀) 등과 함께 대구고보폭압정책반대동맹을 만들어 동맹휴교 투쟁을 벌일 계획을 세웠다. 이후 내부 의견 충돌로 대구고보폭압정책반대동맹이 결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동맹휴교 투쟁을 전개하였다. 시내 각 요소에 3명 또는 4명씩 조를 짜 배치하여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우리들 다수가 최후의 수단을 취하겠노라”라며 설득하여 집으로 돌려보내고,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다소 위협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동맹휴교 투쟁을 펼쳤다. 김기석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선동할 목적으로 당시 와세다[早稻田]고등학원에 재학 중이던 이종진(李鍾津)에게서 「식민지 노예교육 제도를 타도하라!」라는 유인물 31매를 받아 이를 배부하였다.

김기석은 1928년 11월 대구고등보통학교의 동맹휴교 투쟁으로 대구 지역 학생 비밀결사 조직이 경찰에 발각되면서 일제 관헌에 체포되었다. 1929년 10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를 언도받았지만 김기석은 항소하지 않았고, 일본 검사도 공소를 제기하지 않아 석방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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