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067 |
---|---|
한자 | 張德祚 |
영어공식명칭 | Jang Deokjo |
이칭/별칭 | 춘금여사(春琴女史),일파(一波),노노자(怒怒子),마고나가 히가시[孫長東]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류덕제 |
출생 시기/일시 | 1914년 - 장덕조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 장덕조 대구여자공립보통학교 입학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 장덕조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입학 |
활동 시기/일시 | 1929년 - 장덕조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퇴학 |
활동 시기/일시 | 1931년 - 장덕조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학과 입학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 장덕조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학과 중퇴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 장덕조 『제일선』에 단편 「저회(低徊)」 발표 |
활동 시기/일시 | 1950년 - 장덕조 『영남일보』 문화부장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51년~1952년 - 장덕조 『대구매일신문』 문화부장 겸 논설위원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53년 - 장덕조 『평화신문』 문화부장 역밈 |
활동 시기/일시 | 1976년 - 장덕조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활동 |
몰년 시기/일시 | 2003년 2월 - 장덕조 사망 |
출생지 | 경상북도 경산 - 경상북도 경산시 |
수학|강학지 | 대구여자공립보통학교 - 대구광역시 |
수학|강학지 |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 대구광역시 |
수학|강학지 |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 - 서울특별시 |
수학|강학지 | 이화여자전문학교 - 서울특별시 |
성격 | 소설가|언론인 |
성별 | 여성 |
본관 | 인동(仁同) |
대표 관직|경력 | 『영남일보』 문화부장|육군 종군작가|『대구매일신문』 문화부장|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
[정의]
6·25전쟁 중 대구에서 활동한 신문기자이자 소설가.
[개설]
장덕조(張德祚)[1914~2003]는 1914년 경상북도 경산시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필명은 춘금여사(春琴女史), 일파(一波), 노노자(怒怒子), 일본식 이름은 마고나가 히가시[孫長東]이다. 대구여자공립보통학교[현 대구서부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경북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27년 일본인 배척 동맹휴학사건에 참여하고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동참하는 격문을 썼다가 퇴학당하였다. 이후 1931년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현 배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31년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1932년에 중퇴하였다. 이태준의 추천으로 1932년 8월 『제일선』에 단편소설 「저회(低徊)」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활동 사항]
장덕조는 1932년 개벽사에 입사하여 『신여성』 편집기자로 활동하던 중 이태준의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이후 1935년에는 『매일신보』에 소설 「은하수」를 연재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다수의 친일 성향 작품을 발표하여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1950년 6·25전쟁 중 피난지 대구에서 『영남일보』 문화부장을 맡았으며 최초의 여성 종군기자 겸 육군 종군작가로 활동하였다.
장덕조는 1951년부터 1952년까지 『대구매일신문』 문화부장과 논설위원을 하면서 『대구매일신문』에 「여인상」을 발표하였다. 1953년 휴전협정 조인식을 당시 여기자로서는 유일하게 취재하였으며 휴전 후 서울에서 『평화신문』 문화부장으로 근무하였다. 1976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으로 활동하였다.
장덕조는 2003년 2월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장덕조는 연재소설 「광풍」[『동아일보』, 1953~1954], 「낙화암」[『동아일보』, 1956~1957], 「벽오동 심은 뜻은」[『한국일보』, 1963~1964], 「이조의 여인들」[『한국일보』, 1968~1972], 「다정도 병이련가」[『신태양』, 1954], 「지하 여자 대학」[『중앙일보』, 1968] 등을 썼다. 대하소설 『고려왕조 5백년』[전11권, 1985]과 그 외 『십자로』[1953], 『낙화암』[1957], 『벽오동 심은 뜻은』[1963] 등의 소설집이 있다.
장덕조의 친일 담론 작품은 『방송소설명작선』[조선출판사, 1943]에 발표한 「연화촌」, 「우후청천」과, 「재생」[『방송지우(放送之友)』, 1944], 「총후의 꽃」[『방송지우』, 1945]이 있다. 또한 수필 「출발하는 날」[매일신보, 1943. 3. 7.~1943. 3. 10], 소설 「새로운 군상」[매일신보, 1944. 1. 12.~1944. 1. 16], 소설 「행로」[『반도작가단편집』, 조선도서출판, 1944], 희곡 「노처녀」[『조광』, 1944]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장덕조는 1987년 10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문화훈장 보관장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