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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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寒岡先生文集序 |
영어공식명칭 | Hangangmunzipseo |
이칭/별칭 | 「한강문집 서문」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영호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95년 - 「한강선생문집서」 저자 허목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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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680년 - 「한강선생문집서」 창작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680년 - 『한강집』 간행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82년 - 「한강선생문집서」 저자 허목 사망 |
배경 지역 | 사수동 - 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 |
배경 지역 | 도동서원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로 1[도동리 35] |
성격 | 서발류|서문 |
작가 | 허목 |
[정의]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허목이 1680년 대구에서 말년을 보낸 정구의 문집에 쓴 서문.
[개설]
「한강선생문집서(寒岡先生文集序)」의 저자 허목(許穆)[1595~1682]의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자는 문보(文甫)·화보(和甫)이고, 호는 미수(眉叟)이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남인(南人) 중 청남(淸南)의 영수이다. 허목은 조선 후기 실학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구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문인이다. 모든 방면의 학문에 정통하였고, 특히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많은 예서(禮書)를 편찬하였다. 정구는 말년에 칠곡 사수(泗水)[현 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과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일대]로 이거(移居)하여 후진양성에 힘썼으며, 대구를 포함한 인근 지역의 유학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대구광역시에 있는 연경서원(硏經書院)·도동서원(道東書院) 등 많은 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한강집』이 있다. 「한강선생문집서」는 1680년 간행한 『한강집』에 허목이 부친 서문이다. 『국역 한강집』에 수록된 「한강선생문집서」의 이칭은 「한강문집 서문」이다.
[구성]
「한강선생문집서」는 정구 가문의 내력과 학문적 연원, 평생에 이룬 학문적 업적, 관직 생활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허목은 「한강선생문집서」 서두에서 정구 가문의 시원(始原)과 내력을 간략히 서술하였다. 이어서 평생 예학과 『심경(心經)』에 몰두한 정구의 학문적 지향과 이황과 조식의 학통을 두루 계승한 학문적 연원을 밝혔다. 이어 정구의 환로(宦路)에서의 삶을 미사여구로 꾸미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였으며, 인용을 제시할 때는 출처를 명확히 하였다. 「한강선생문집서」의 내용은 경전 이해에 밝은 정구의 모습을 다양한 사례로 나타낸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정구의 학문적 식견을 강조하면서 단순히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몸소 실천으로 옮긴 실천 지향의 삶을 다양한 일화로 제시하였다. 허목은 「한강선생문집서」를 통하여 스승인 정구의 학문적 면모를 강조하면서 평생 이룬 학문적 업적을 축약적으로 나타내었다.
[특징]
「한강선생문집서」는 행장의 축약본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정구에 대한 사실 정보들이 자세히 나열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한강선생문집서」에서 허목은 자신을 정구의 제자로 자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허목이 후대 실학사상에 끼친 학문적 근원의 한 축이 정구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