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5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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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訪金大猷 宏弼 幽居 |
영어공식명칭 | Visit Kim-Goengpil Who Lives In A Depth Place And Recite A Poem |
이칭/별칭 | 「김굉필의 유거를 방문함」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곽명재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439년 - 「방김대유 굉필 유거」 저자 양희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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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504년 - 「방김대유 굉필 유거」 저자 양희지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787년 - 『대봉집』 간행 |
배경 지역 | 오천서원 -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
성격 | 한시|오언율시 |
작가 | 양희지 |
[정의]
대구의 오천서원에 제향된 조선 전기 문신 양희지가 김굉필의 거처를 방문하고 지은 한시.
[개설]
「방김대유 굉필 유거(訪金大猷 宏弼 幽居)」의 저자 양희지(楊熙止)[1439~1504]의 본관은 중화(中和)이고, 자는 가행(可行)·정보(楨父), 호는 대봉(大峰)이다. 아버지는 양맹순(楊孟淳)이고, 어머니는 나주정씨(羅州鄭氏) 정시교(鄭是僑)의 딸이다.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문인이다. 1474년 문과에 급제한 이후로, 이조좌랑, 사헌부감찰, 예조좌랑, 형조판서, 충청감사, 도승지, 대사헌 등 내외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483년에는 현풍현감(玄風縣監)을 지냈다. 서거정(徐居正)[1420~1488], 김굉필(金宏弼)[1454~1504] 등 조선 전기 명신들과 교유하였다. 저서로 『대봉집(大峯集)』이 전한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오천서원(梧川書院)에 제향되었다.
김굉필의 본관은 서흥(瑞興)이며, 자는 대유(大猷), 호는 사옹(簑翁)·한훤당(寒暄堂)이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증조부 김중곤(金中坤)이 현풍곽씨(玄風郭氏)에게 장가들어 현풍에 세거지가 마련되었다. 아버지는 김뉴(金紐)이며, 어머니는 청주한씨(淸州韓氏) 한승순(韓承舜)의 딸이다. 김종직의 문인이다. 평생 『소학(小學)』을 중시하여 ‘소학동자(小學童子)’라고 불렸다. 사장(詞章)보다는 경학(經學)을 중시하였고, 수기(修己)를 강조하였다. 고려 정몽주(鄭夢周)[1337~1392]에서 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유학사의 정통을 계승하였고, 벗인 정여창(鄭汝昌)[1450~1504]과 제자인 조광조(趙光祖)[1482~1519], 이언적(李彦迪)[1491~1553], 이황(李滉)[1501~1570] 등과 함께 오현(五賢)으로 문묘에 종사되었다. 대구광역시의 도동서원(道東書院) 등 많은 서원에 배향되었다.
「방김대유 굉필 유거」는 쉬운 우리말로 제목을 풀이하면 「김굉필의 유거를 방문함」이다.
[구성]
「방김대유 굉필 유거」는 오언율시(五言律詩)이다.
[내용]
소쇄점거벽(瀟灑占居僻)[산뜻 후미진 곳에 거처를 정하여]
유잠도미진(幽潛道味眞)[깊이 잠기니 도의 참맛 느끼네]
필재문하사(畢齋門下士)[점필재 선생 문하의 선비들은]
소학권중인(小學卷中人)[소학을 익히는 사람들이라네]
가일래심지(暇日來尋地)[틈나는 날 이곳에 찾아오나니]
훈풍좌습춘(薰風坐襲春)[앉은 자리에 봄바람이 젖어드네]
은근하경발(慇懃荷警發)[은근히 경계하는 말씀 들으니]
괴아상미진(愧我尙迷津)[내 갈길 찾지 못한 것 부끄럽네]
[특징]
「방김대유 굉필 유거」는 ‘진(眞)’ 계열의 운목이 사용된 오언율시이다. 시 전체에 청량감이 감돈다.
[의의와 평가]
「방김대유 굉필 유거」는 김굉필의 거처를 방문하고 학문에 열중하는 김굉필의 모습에 자신의 바람을 빗대어 노래한 작품이다. 그윽하고 깊은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학문에 몰두하는 김굉필의 모습과 여가(餘暇)에 방문한 양희지 자신의 모습을 배치하여 김굉필 평생의 학문적 지향을 칭송하고 유거(幽居)의 분위기를 노래하였다. 양희지가 방문한 김굉필의 유거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이자 수기(修己)의 공간으로 설정되어 자신의 바람을 은근히 표출한 것이다. 김굉필의 유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양희지는 틈날 때마다 유거를 방문하여 친밀히 교류하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