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5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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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慕堂集序 |
영어공식명칭 | Preface Of Modangjip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곽명재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714년 - 「모당집서」 저자 이광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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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784년 - 「모당집서」 창작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784년 - 『모당집』 간행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789년 - 「모당집서」 저자 이광정 사망 |
배경 지역 | 청호서원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250-11[황금동 산79-4] |
성격 | 서발류|서문 |
작가 | 이광정 |
[정의]
1784년 이광정이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손처눌의 문집인 『모당집』에 부쳐 쓴 서문.
[개설]
「모당집서(慕堂集序)」의 저자 이광정(李光靖)[1714~1789]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휴문(休文)이고, 호는 소산(小山)이다.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1711~1781]의 동생이다. 경술(經術)에 뛰어나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천거되었다. 「모당집서」는 이광정이 동몽교관으로 재직할 때인 1784년 쓴 글이다.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손처눌은 대구부(大丘府) 수성리(壽城里) 황청동(黃靑洞)[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서 태어났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1554~1637], 서사원(徐思遠)[1550~1615], 곽재겸(郭再謙)[1547~1615], 류요신(柳堯臣)[1550~1618] 등과 교유하였다. 학문과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임진왜란(壬辰倭亂)[1592]이 발발하자 대구의 지역 인사들과 공산의진군(公山義陣軍)을 조직하여 왜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서사원과 함께 대구 지역의 강학 활동에 힘써 대구 문풍(文風)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의 청호서원(靑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모당집(慕堂集)』이 있다.
[구성]
「모당집서」는 손처눌의 학문적 성취와 공업(功業)을 찬양하고, 『모당집』 간행의 의의를 밝히고 있다.
[내용]
「모당집서」는 유학(儒學)의 연원(淵源)을 이은 손처눌의 학문과 공덕을 찬양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전체 구성은 4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1단에서는 스승 얻기 어려움을 도학(道學)의 연원에 비추어 설명하였다. 2단에서는 손처눌의 학문적 연원을 밝히고 있다. 정구를 스승으로 하여, 장현광, 정경세(鄭經世)[1563~1633], 서사원 등 제현(諸賢)들과 교유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에서 이어지는 영남 유학의 학맥을 밝힌 것이다. 3단에서는 후진양성에 온 힘을 쏟았던 공업과 스승의 무고를 변론하였던 일화를 제시하여 손처눌의 인물됨을 평하고 있다. 4단에서는 『모당집』 간행의 과정과 의의를 밝히며 글을 마무리하였다.
[특징]
「모당집서」에서는 대비되는 인물을 제시하여 손처눌의 인물됨을 돋보이게 하였다.
[의의와 평가]
「모당집서」는 손처눌의 학문적 연원을 밝히고, 손처눌에 대한 인물 품평에 초점을 둔 작품이다. 이광정은 「모당집서」를 통하여 영남 학맥의 자부심을 나타내는 동시에 대구 유학을 부흥시킨 손처눌의 공덕을 찬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