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5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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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敬次退溪李先生畫巖韻 |
영어공식명칭 | Reply to the Hwa-arm poem written by Teacher Lee-hwang |
이칭/별칭 | 「화암시」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곽명재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56년 - 이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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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04년 - 이주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851년 - 「경차퇴계이선생화암운」 저자 『태암집』 간행 |
배경 지역 | 화암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 |
성격 | 한시|칠언절구 |
작가 | 이주 |
[정의]
대구의 연경서원을 노래한 퇴계 이황의 한시에 차운하여 조선 전기 학자인 이주가 지은 한시.
[개설]
「경차퇴계이선생화암운(敬次退溪李先生畫巖韻)」의 배경 지역인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 지역에 최초로 지어진 서원으로, 이황(李滉)[1501~1570]·정구(鄭逑)[1543~1620]·정경세(鄭經世)[1563~1633] 3인과 함께 별도로 향현사(鄕賢祠)를 세워 전경창(全慶昌)[1532~1585]과 이숙량(李淑樑)[1519~1592]을 제향하였던 서원이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었다. 연경서원의 터는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과 북구 연경동 사이에 있다. 이황은 연경서원 건립 공사가 완공되어 가고 있던 1565년(명종 19) 봄에 「서원십영(書院十詠)」 시를 지었는데, 그중 한 수(首)가 연경서원을 노래한 「화암서원(畫巖書院)」이다. ‘화암서원’은 연경서원의 별칭이다.
이주(李輈)[1556~1604]는 본관이 인천(仁川)이며, 자는 경임(景任)이고, 호는 태암(苔巖)이다. 이주는 1556년(명종 11) 파잠리(巴岑里)[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서 태어났고, 후에 무태(無怠)[현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로 옮겨 살았다. 전경창(全慶昌)·정구(鄭球)·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고, 정경세(鄭經世) 등과 교유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사원(徐思遠)과 함께 창의병(愴義兵)을 모집, 군량을 조달하고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의 소모관(召募官)으로 있었다.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의 서계서원(西溪書院)에 제향되었다.
[구성]
「경차퇴계이선생화암운」은 칠언절구이다.
[내용]
기암여화자천성(奇巖如畫自天成)[화폭과 같이 빼어난 암벽 천연히 이루어져]
삭입층공기겁경(削立層空幾劫經)[하늘로 가파르게 서서 몇 겁의 세월 견뎠는가?]
억석퇴도부자훈(憶昔退陶夫子訓)[옛적 퇴계 선생의 가르침을 생각하여 보니]
잉교취몽각성성(剩敎醉夢各醒醒)[취하고 몽매한 자들 일깨우기 충분하네]
[특징]
「경차퇴계이선생화암운」은 청(靑) 계열의 운목이 사용된 칠언절구이다. 결구(結句)는 이황의 「화암서원」 결구의 내용을 이어받아 읊은 것이다.
[의의와 평가]
「경차퇴계이선생화암운」은 이황의 「화암서원」에 가장 먼저 차운한 한시이다. 대구 지역 퇴계의 학맥 계승과 정착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