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4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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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次樂翁顔字韻 |
영어공식명칭 | Chanakonganjaun |
이칭/별칭 | 「낙재가 안 자로 운을 써서 지은 시에 차운하다」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영호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53년 - 「차낙옹안자운」 저자 손처눌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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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34년 - 「차낙옹안자운」 저자 손처눌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784년 - 『모당집』에 「차낙옹안자운」 수록하여 간행 |
배경 지역 | 청호서원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250-11[황금동 산79-4] |
성격 | 한시|칠언절구 |
작가 | 손처눌 |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의병 활동을 한 손처눌이 학문적 동지인 서사원에게 지어 준 차운시.
[개설]
「차낙옹안자운(次樂翁顔字韻)」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1554~1637], 서사원(徐思遠)[1550~1615], 곽재겸(郭再謙)[1547~1615], 류요신(柳堯臣)[1550~1618] 등과 교유하였다. 학문과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임진왜란(壬辰倭亂)[1592]이 발발하자 대구의 지역 인사들과 공산의진군(公山義陣軍)을 조직하여 왜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서사원과 함께 대구 지역의 강학 활동에 힘써 대구 문풍(文風)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대구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의 청호서원(靑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모당집(慕堂集)』이 있다.
‘낙옹(樂翁)’은 서사원이다. 서사원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군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원은 임진왜란기를 중심으로 영남에서 구국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열악한 환경에서 학문 연마와 강학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황(李滉)[1501~1570]의 학맥을 계승한 정구를 찾아가 배웠고, 정구는 서사원을 사우(師友)로 대우하였다. 장현광, 곽재겸, 손처눌 등과 교유하였다. 서사원의 위패는 청주의 구계서원(龜溪書院)에 봉안되었고, 2008년 대구광역시 북구에 있는 구암서원(龜巖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낙재집(樂齋集)』이 있다.
2001년 발행한 『국역 모당선생문집(國譯慕堂先生文集)』에서는 「차낙옹안자운」의 제목을 쉬운 우리말로 풀이하여 「낙재가 안 자로 운을 써서 지은 시에 차운하다」라고 표기하였다.
[구성]
「차낙옹안자운」은 칠언절구(七言絕句)이다.
[내용]
아형사업경운윤(阿衡事業耕雲尹)[이윤도 재상의 사업 이루기 전에는 은거하였고]
극기공부복례안(克己工夫復禮顔)[안자는 극기 공부하여 예로 돌아갈 수 있었네]
이차종신근양력(以此終身勤養力)[이를 바탕으로 평생 부지런히 힘써 기른다면]
일표진락만민안(一瓢眞樂萬民安)[단사표음 진정 즐긴다면 만민이 평안하리라]
[특징]
「차낙옹안자운」의 운자인 ‘안(顔)’과 ‘안(安)’은 각각 ‘산(刪)’과 ‘한(寒)’ 계열의 운목을 통운(通韻)한 칠언절구이다. ‘산(刪)’과 ‘한(寒)’ 계열의 운목은 서로 인운(隣韻)이어서 자주 통운하여 사용한다.
[의의와 평가]
「차낙옹안자운」은 서사원이 ‘안(顔)’을 운자로 쓴 시에 손처눌이 차운하여 지은 시이다. 서사원이 「차낙옹안자운」에 이어 다시 같은 운을 써서 손처눌에게 지어 준 차운시 「갱보전운증모옹(更步前韻贈慕翁)」이 『모당집』에 수록되어 있다. 「갱보전운증모옹」은 『낙재집(樂齋集)』에 「증손기도(贈孫幾道)」라는 제목으로 전한다. 손처눌은 「차낙옹안자운」에서 은거하던 이윤(李胤)[1462~?]과 극기복례(克己復禮)에 힘썼던 안회(顔回)를 소재로 활용하여 자신의 이상향을 드러내었다. 손처눌과 서사원은 시를 주고받으면서 처한 환경에 따라 천리(天理)에 순응하며 일을 행하기를 서로 권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