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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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硏經書院 次退溪先生韻 |
영어공식명칭 | Reply to Lee Hwang's poem in Yeongyeongseowon |
이칭/별칭 | 연경서원에서 퇴계 선생의 시에 차운하다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영호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69년 - 이시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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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603년 - 「연경서원 차퇴계선생운」 창작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26년 - 이시발 사망 |
배경 지역 | 연경서원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 |동구 지묘동 |
성격 | 한시|칠언절구 |
작가 | 이시발 |
[정의]
1602년 대구의 연경서원을 중건하면서 조선 후기 문신 이시발이 지은 한시.
[개설]
「연경서원 차퇴계선생운(硏經書院 次退溪先生韻)」을 쓴 이시발(李時發)[1569~1626]은 본관이 경주(慶州)이며, 자는 양구(養久)이고, 호는 벽오(碧梧)이다. 이덕윤(李德胤)의 문인이고, 정경세(鄭經世)와 교유하였다. 1601년 경상감사가 되어 4년간 유임하였다. 저서로 『벽오유고(碧梧遺稿)』가 있다. 연경서원은 낙성을 기준으로 1565년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1602년 중건의 기록이 있으나 「연경서원 차퇴계선생운」 내용으로 보아 1602년은 낙성한 때를 가리키는 것이고 중건 완료는 이듬해 1603년으로 추정된다.
[구성]
「연경서원 차퇴계선생운」은 칠언절구이다. ‘연경서원에서 퇴계 선생의 시에 차운하다’라는 의미이다.
[내용]
삼재관풍괴작성(三載觀風媿作成)[3년간 관풍루에 있으면서 늘 부끄러움 있었는데]
청금무처포유경(靑衿無處抱遺經)[유생들 갈 곳 없다가 이제야 경서 받들 수 있네]
중신구원비능사(重新舊院非能事)[옛 서원을 새로이 중건한 것만이 능사가 아니니]
수향신심조환성(須向新心早喚醒)[새로운 마음으로 반드시 서둘러 불러 일깨우길]
[특징]
「연경서원 차퇴계선생운」은 이황(李滉)의 「화암서원(畵巖書院)」에 사용된 청(青) 계열의 운목을 사용하여 지은 칠언절구이다.
[의의와 평가]
연경서원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과 동구 지묘동 사이에 있던 것으로 추측된다. 「연경서원 차퇴계선생운」은 임진왜란 후 소실된 연경서원의 중건을 추측할 수 있는 자료이자, 경상감사였던 이시발의 정성과 후학들에 대한 권면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