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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사학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406
한자 示精舍學徒
영어공식명칭 An Article That Show To The Students Of Jeongsa
이칭/별칭 「정사의 학도들에게 보이는 글」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50년 - 「시정사학도」 저자 서사원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15년 - 「시정사학도」 저자 서사원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843년 - 『낙재선생문집』 간행
배경 지역 이강서원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 277 지도보기
배경 지역 구암서원 -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17길 20[산격동 산79-1]지도보기
배경 지역 서사원 본가터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지도보기
성격 잡기류|잡저
작가 서사원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임진왜란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정사 학도들의 배움을 독려하기 위하여 지은 글.

[개설]

「시정사학도(示精舍學徒)」의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원은 임진왜란기(壬辰倭亂期)를 중심으로 영남에서 구국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열악한 환경에서 학문 연마와 강학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황(李滉)[1501~1570]의 학맥을 계승한 정구(鄭逑)[1543~1620]를 찾아가 배웠고, 정구서사원을 사우(師友)로 대우하였다. 장현광(張顯光)[1554~1637], 곽재겸(郭再謙)[1547~1615], 손처눌(孫處訥)[1553~1634] 등과 교유하였다. 서사원의 위패는 청주의 구계서원(龜溪書院)에 봉안되었고, 2008년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구암서원(龜巖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낙재집(樂齋集)』이 있다.

「시정사학도」는 강학과 대구 지역 문풍 교화를 위하여 만들어진 정사의 학생들에게 학문으로 나아가는 방향과 자세를 안내하기 위하여 지은 글이다. 임진왜란 후 선사현[지금의 다사읍 이천리]에 이천정사(伊川精舍)를 재건할 즈음에 지어진 작품으로 예측된다. 2008년 이회문화사에서 발행한 『국역 낙재선생문집(國譯 樂齋先生文集)』에서는 쉬운 우리말로 제목을 풀이하여 「정사의 학도들에게 보이는 글」이라고 표기하였다.

[구성]

「시정사학도」는 학문에 나아가는 방향과 바른 자세에 대한 설명을 네 단락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내용]

「시정사학도」의 단락별 주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단락. 도(道)는 떠날 수 없으니 배우는 자가 날마다 공부하여 마음이 항상 도에 있어야 한다.

2단락. 도(道)에 들어서는 기본은 입지(立志)를 원대히 하고 마음을 보존하여 독실히 하여야 한다.

3단락. 도(道)는 아득하거나 심원한 물사(物事)가 아니고 다만 날마다 쓰는 가운데에 있을 따름이다.

4단락. 입지와 존심(存心)은 다른 사람을 우러러 이룰 수 없지만 친구간에 절차탁마하는 힘으로 점점 아름다운 경지에 들어갈 수 있으니, 정사의 설립은 장수(藏修)와 보인(輔仁)의 실상을 보기 위한 것이다.

[특징]

「시정사학도」는 각 단락의 주제를 문단의 맨 앞에 배치하여 간단하고 분명하게 부연 설명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시정사학도」는 정사의 학생들에게 보이는 글이지만 서사원의 학문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네 단락이 어우러져 한 편이 글이 되고 있지만 각 단락을 분리시켜 놓아도 한 편의 글이 될 정도로 논리가 정연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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