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3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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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仙査精舍學規 |
영어공식명칭 | Sunsa-jeongsa's rules |
이칭/별칭 | 선사정사의 학칙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달서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영호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50년 - 서사원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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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599년 - 「선사정사학규」 창작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15년 - 서사원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843년 - 「선사정사학규」 저자 서사원의 『낙재선생문집』 간행 |
배경 지역 | 구암서원 -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17길 20[산격동 산79-1] |
배경 지역 | 서사원본가터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
배경 지역 | 이강서원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 |
성격 | 잡기류|학규 |
작가 | 서사원 |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을 전개한 서사원이 선사정사를 만들고 정한 규칙.
[개설]
「선사정사학규(仙査精舍學規)」를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원은 임진왜란기를 중심으로 영남에서 구국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열악한 환경에서 학문 연마와 강학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황(李滉)의 학맥을 계승한 정구(鄭逑)[1543~1620]를 찾아가 배웠고, 정구는 서사원을 사우(師友)로 대우하였다. 장현광(張顯光), 곽재겸(郭再謙), 손처눌(孫處訥) 등과 교유하였다. 서사원의 위패는 청주의 구계서원(龜溪書院)에 봉안되었고, 2008년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구암서원(龜巖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낙재집(樂齋集)』이 있다. 임진왜란 후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에 선사재(仙査齋)를 다시 짓고 강학(講學)의 장소로 삼았다. 후학 양성과 대구 지역의 문풍을 진흥시키고자 ‘선사정사(仙査精舍)’로 이름하고, 1599년 선사정사의 학칙인 「선사정사학규」를 제정하여 규칙으로 삼았다.
[구성]
「선사정사학규」는 총 22개의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
「선사정사학규」는 입학 규정, 원장(院長)·유사(有司) 등 책임자의 선발, 업무 분장, 기물 관리, 복장, 예절, 생활 규정 등을 규칙으로 제정하였다. 강학 전반에 필요한 사무와 업무 규정, 학생이 지켜야 할 규범이 22개의 항목에 잘 드러나 있다.
[특징]
「선사정사학규」는 지행합일을 강조하여, 재(齋)에 있을 때와 집에 있을 때의 행동거지를 살펴 언행이 항상 일치되도록 독려하였다.
[의의와 평가]
「선사정사학규」는 당시 대구 지역의 서원(書院)에 준하는 정사(精舍) 관리 규정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