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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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旌閭閣- 夏光臣- 孝行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화랑로42길 12[만촌동 385-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석배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1년 - 「정려각에 얽힌 하광신의 효행」 국학자료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Ⅰ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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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정려각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화랑로42길 12[만촌동 385-1]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하광신|하흠|하용|노모|충숙왕 |
모티프 유형 | 효행담 |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효자 하광신의 정려각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개설]
「정려각에 얽힌 하광신의 효행」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晩材洞)에 있는 효자 하광신(夏光臣)의 정려각(旌閭閣)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효행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정려각에 얽힌 하광신의 효행」은 2001년 국학자료원에서 펴낸 『한국구비문학』Ⅰ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정려각은 하광신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정려각은 대구와 경상북도 지방 일원에서 가장 오래된 효자비의 하나인데, 고려시대 이부시랑(吏部侍郎)을 지낸 하광신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조정에서 정문(旌門)을 내려 세운 것이다.
하광신은 달성하씨(達城夏氏)인데, 중국 송나라 대도독(大都督)이던 하흠(夏欽)이 고려시대에 정착하여 달성하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 후 아들 하용(夏溶)이 고려를 침공한 오랑캐를 무찔러 큰 공을 세우자 조정에서 달성군(達城君)에 봉하였는데, 이후로 대구에 하씨들이 많이 살게 되었다.
하광신은 하용의 손자로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하루는 몇 해째 중병을 앓고 있던 노모가 늦겨울에 갑자기 복숭아를 찾았다. 하광신은 복숭아를 구할 방법이 없어 마을 뒷산에 올라가 자신의 효성이 부족함을 한탄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송아지만 한 호랑이가 나타나 등에 타라고 하여 올라탔더니 하광신을 깊은 산속의 외딴집으로 데려다주었다. 외딴집에서는 막 제사를 마쳤을 때라, 제사상에 복숭아가 있었다. 하광신은 집 주인에게 복숭아 한 개만 달라고 간청하였고 복숭아를 얻어 노모에게 드렸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노모가 세상을 떠나자 하광신은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하광신의 효행이 조정에 전하여지자, 충숙왕(忠肅王)[1294~1339]은 정문을 내려 마을에 세우게 하고, 하광신의 자손에게는 특별히 부역까지 면하여 주도록 하였다.
[모티프 분석]
「정려각에 얽힌 하광신의 효행」은 전형적인 효행담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