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4985 |
---|---|
한자 | 花卉怪石 |
영어공식명칭 | Flowers and Rocks |
이칭/별칭 | 괴석화훼도,괴석도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작품/미술과 공예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혜경 |
작가 생년 시기/일시 | 1862년 - 『화훼괴석』 서병오 출생 |
---|---|
창작 시기/일시 | 1927년 - 『화훼괴석』 창작 |
작가 몰년 시기/일시 | 1936년 - 『화훼괴석』 서병오 사망 |
소장처 | 대구미술관 - 대구광역시 수성구 미술관로 40[삼덕동 374] |
성격 | 동양화|묵화 |
양식 | 134㎝[10폭 병풍 한 폭 기준 세로]|33.5㎝[10폭 병풍 한 폭 기준 가로] |
작가 | 서병오 |
재질 | 한지 |
관리자 | 대구미술관 |
[정의]
대구 출신의 서화가 서병오가 1927년에 돌과 화초를 주제로 그린 10폭 병풍 묵화.
[개설]
『화훼괴석(花卉怪石)』은 대구 출신의 서화가인 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1862~1936]가 1927년에 그린 10폭 병풍 그림이다.
『화훼괴석』의 ‘화훼’는 화초를 의미하며 ‘괴석’은 평범하지 않고 기괴한 모양으로 생긴 돌을 의미한다. 괴석은 천지의 창조와 함께 시작된 존재이기에 태고의 신비성을 지닌다. 세월의 풍파에도 변하지 않는 불변성을 의미하며, 화훼가 담고 있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속성을 지닌다. 화훼와 괴석을 함께 그린 그림은 조선 후기, 일제강점기에 유행한 화풍이다.
[형태]
서병오의 『화훼괴석』은 폭이 좁고 길이가 긴 괴석을 화촉에 길게 늘어뜨려 그렸다. 옅은 담묵을 사용하여 그린 괴석은 우뚝 솟은 입석형이며, 상부에서 좁고 길게 시작하여 하부로 내려갈수록 조금씩 넓어지는 형태이다. 대담하고 강한 붓질로 하부로 내려갈수록 굵고 힘차게 표현되어 있으며, 괴석 옆 풀들도 과감하게 그려져 있어 풀이 가지는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돌은 외적인 견고함과 불변성으로 인하여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것으로 의미가 부여되었고, 조선 후기에 ‘괴석도’라는 새로운 화목(畵目)으로 등장하였다. 서병오도 괴석을 잘 그렸는데, 괴석과 함께 석난화, 석죽, 묵매, 묵화 등을 그렸다.
1927년에 그린 서병오의 『화훼괴석』은 강한 운필법과 필묵을 사용하여 입체적이고 독특한 형상의 개성적인 바위로 표현되었다. 서병오의 괴석 그림이 초창기에는 좌우의 비대칭을 활용한 역동적 모양을 하고 있다면 말년에 그린 괴석 그림은 폭이 좁고 우뚝 솟은 입석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괴석 하단에 화훼를 배치하고 있다.
[내용]
『화훼괴석』은 10폭 병풍 그림이다. 오른쪽부터 괴석(怪石), 매화(梅花), 난석(蘭石), 국석(菊石), 죽석(竹石), 석모란[石牡丹], 매화, 석모란, 석국, 괴석이 차례로 그려져 있으며, 틀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구성을 보이고 있다. 그림 속 글씨는 비교적 간결하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우뚝우뚝 삐죽삐죽 쌓였어도 돌의 성질이 아님이 없고, 괴상하기도 하고 기묘하기도 하지만 또한 돌의 형태이다. 초연히 돌의 형태도 없고, 돌의 성질도 없는 것에 생각을 두고 그렸으니 바야흐로 얻은 바가 있다[矗矗磊磊 無非石質 或怪或奇 亦是石形 超然置思於無形無質 方有所得 石翁倂題].”
[특징]
서병오의 『화훼괴석』은 당시 유행하던 상하이 화풍을 따른 것이다. 괴석에 담묵으로 명암을 주고 질감을 표현하였으며, 괴석을 중심으로 화훼가 배치되는 구도를 이루고 있다.
[의의와 평가]
한국 근대 영남 문인 화맥의 형성에 큰 축은 석재 서병오를 개조로 형성 및 전개된다. 대구 전통 화단의 주요 화목인 사군자화를 괴석도와 접목시켜 충의와 절개의 의미를 강화하였다. 서병오는 대구를 중심으로 교남시서화연구회를 창설하여 문인화의 기반을 다지고 ‘화훼괴석도’의 유행을 선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