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45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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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棣華堂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 9[산격동 91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충희 |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창건된 재실.
[개설]
체화당(棣華堂)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義兵將)으로 전공을 세운 이재(怡齋) 서사진(徐思進)의 아들 삼 형제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재실이다. ‘체화’는 『시경(詩經)』「상체(常棣)」에 출전을 둔 것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의미한다.
서사진의 첫째 아들 서신(徐愼)[1585~1641]은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증직(贈職)으로 통훈대부(通訓大夫) 군자감정(軍資監正)을 받았다. 둘째 아들 서율(徐慄)[1606~1687] 은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셋째 아들 서업(徐𢢜)[1612~1676]도 손처눌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대구 지역의 이름난 선비들과 교유하였다.
[위치]
체화당은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913에 있다. 연암산 산자락에 있는 마을이어서 연암마을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달성서씨의 집성촌이다. 달성서씨 문중에서 운영하던 서당 용담재(龍潭齋)와 일신재(一新齋) 등이 있었기 때문에 서당골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변천]
체화당이 있는 곳에는 원래 300년 정도 내력이 있는 달성서씨의 문중 건물과 서율의 남계정사(南溪精舍) 건물이 있었다. 1959년에 달성서씨의 문중 건물과 남계정사를 통합하여 새롭게 ‘체화당’이라는 이름을 붙여 중건하였다.
[형태]
체화당은 정면 5칸, 측면 1.5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화악문(花萼門)’이라는 솟을대문이 있다.
[현황]
체화당은 달성서씨의 재실로서 달성서씨 문중의 회합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