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45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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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悅樂堂 |
영어공식명칭 | Yeollakdang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로 134-13[상인동 885-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병호 |
[정의]
조선후기 대구광역시 출신 의병장 월곡 우배선의 우국충정과 선비 정신을 기리는 재실.
[개설]
열락당(悅樂堂)은 임진왜란 당시, 화원과 달성 그리고 최정산(最頂山) 등지에서 왜구를 무찔러, 초유사 김성일(金誠一)[1538~1593]의 치하를 받았고, 망우당 곽재우(郭再祐)[1552~1617] 장군과 합세하여 적을 토벌하는 데 헌신한 우배선(禹拜善)[1569~1621]을 기리는 재실이다. 우배선은 할머니 상을 당하고, 마마를 앓는 와중에도 군무(軍務)를 폐하지 않는 충성을 보였다. 순찰사 한효순(韓孝純)[1543~1621], 체찰사 이원익(李元翼)[1547~1634] 등이 우배선의 충효를 알아주어, 합천(陜川)군수에 제수되었다.
우배선은 1600년에는 금산군수가 되어 전후 군민을 구휼하는 선정을 베풀었다. 1605년 선무원종 일등공신에 올랐다. 1607년 경상좌수영 우후(虞候)에서 체직되어 고향 월곡리(月谷里)[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로 돌아왔다.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 망우당 곽재우, 인재(訒齋) 최현(崔晛)[1563~1640] 등과 월곡정사(月谷精舍)에서 경전을 강론하며 역학(易學)에 몰두하였다. 당시의 당호가 『논어』「학이」 첫 구절에서 두 글자를 따온 ‘열락’이다.
[위치]
열락당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다.
[변천]
월곡 우배선이 향리로 돌아와 경전을 강론하여 책을 읽던 열락당은 그동안 퇴락하여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995년 종종에서 뜻을 모아 장지산 기슭에 중건하여 추모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형태]
열락당은 솟을대문에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대청 2칸 골기와 팔작지붕에 기와 돌담으로 주위를 두르고 있다.
[현황]
열락당의 건립 취지를 기술한 우성규(禹成圭)의 「열락당기」와 11세손 우억기(禹億基)의 「중건기문」이 있다.
[의의와 평가]
열락당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월곡 우배선의 의병 투쟁과 우국의 선비 정신을 기리려는 종중의 열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