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43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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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洋襪工共存會 |
이칭/별칭 | 양말직공조합,양말공공조회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삼조 |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양말 직공 노동 단체.
[변천]
양말공공존회(洋襪工共存會)는 1924년 6월 22일 경정 2정목 직공양말소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우종면이 사회를 맡았고, 대구노동공제회 김하정이 축사를 하였다. 집행위원으로 문상직·강진환·채범식·홍낙우·안종범이 선출되었다. 창립총회 당시 강령과 규약을 정하였다. 양말공공존회는 대구노동공제회가 설립에 관여하였다.
양말공공존회는 창립 당시 통일되지 않았던 임금을 양말 한 타에 육십 전으로 정하였고, 대구 지역 양말 직공 임금의 평준화를 추진하였다. 임금 평준화의 첫 시작은 남성정에 있는 세신양말점이었는데, 임금으로 오십 전밖에 주지 않자, 정식으로 임금 협상을 하기로 결의하였다.
양말공공존회에서는 1925년 12월 6일 오후 7시 대구 서성정 대구노동공제회관 내에서 양말직공조합 혁신 대회를 개최하였다. 사회는 문상진이 맡고, 개회사는 강한석이 하고, 위원들을 선출하였다. 총무부 위원에는 문상진·강한석·홍낙유·오상우·이창부가 선출되었고, 교양부 위원은 강인수·강진환·유동호가, 조사부 위원에는 김원식·오명근·최두현이 선출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24년 창립 당시 강령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의돈목(友誼敦睦)과 호상부조를 주된 목표로 하여 공존공영을 도모한다. 둘째, 지식을 교환하여 인격의 향상을 주로 한다. 셋째, 기술을 장려한다. 넷째, 공장주와 충분한 양해 하에 분배상 공평을 기한다.
다음은 1925년 양말직공조합 혁신 대회의 결의 사항이다. 첫째, 조선노동총동맹에 가맹한다. 둘째, 전조선양말직공총연맹을 발기한다. 셋째, 대구노동연맹을 발기한다. 넷째, 조합 각원이 매월 1원씩 저축한다.
[현황]
양말공공존회는 1925년 11월 초순경 일제히 대창공장, 재등양말공장, 대구양말소 등을 상대로 동맹파업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양말공공존회는 1920년대 대구 지역 직업별 노동운동의 양상과 대구노동공제회의 역할을 확인할 수 있는 단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