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3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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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刑務所 附屬工場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공평로4길 11[삼덕동2가 149-28]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노광 |
[정의]
근대 대구시 중구 삼덕동에 있었던 직업 훈련 기관.
[설립 목적]
1912년 12월 일제가 대구형무소에서 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교육 훈련 기관으로 부속공장을 설립하였다.
[변천]
대구에 근대공업이 이식된 시기는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회사령이 발표된 1910년 전후이며, 그 후 대구에서 기업다운 기업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대구에 건설된 공장은 주로 수출산업의 가공 부문이나 수입 상품의 비경쟁 부문에 국한되어 있었다. 수출산업의 가공 부문으로는 정미업이, 수입 상품의 비경쟁 부문으로는 연초 제조업, 양조업, 기와 공장 등이 있었다.
일제는 각종 직물업의 독점 및 하청 생산 체제로 산업 기반을 정비·구축하기 위하여 대구산업실습소 및 대구기업소를 설립하여 기술자를 양성하였고, 1912년 2월에는 대구형무소에 교육 훈련 기관으로 부속공장을 설립하였다.
1919년에 작성된 ‘대구감옥공장신설공사배치도’를 보면 확장된 부지에 공장 건물이 들어선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여기에 덧붙여서 뒤편과 좌측 편에 부지를 확장하여 감방과 공장을 신축한 것을 볼 수 있다. 대구형무소의 전신은 1908년 대구시 중구 성내동 중부경찰서 뒤편에 ‘대구감옥’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는데, 1910년 대구감옥이 중구 삼덕동 대구형무소 위치로 확장·이전하였으며, 1961년 대구교도소로 개칭한 이후 1971년 현재의 달성군 화원읍으로 이전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형무소 부속공장에서는 수입면사를 이용하여 간수들의 의복용 직물을 생산함으로써 제직 기술을 습득하였다. 1918년까지만 하더라도 경북 직물업은 재래식 직기가 7만 9552대나 되었으며, 주로 가내공업형으로 지속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