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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3033
한자 姜香蘭
영어공식명칭 Kang Hyangran
이칭/별칭 강해선(姜海先),강석자(姜石子)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0년연표보기 - 강향란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1년 9월 - 강향란 서울 배화여학교 보통과 4학년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22년 6월 1일 - 강향란 정측강습소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28년 - 강향란 근우회 경성지회 설립 준비 및 운영 참여
출생지 대구 - 대구광역시
학교|수학지 배화여학교 - 서울특별시
학교|수학지 도쿄 - 일본 도쿄시
활동지 서울 - 서울특별시
성격 여성운동가
성별 여성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여성운동가.

[개설]

강향란(姜香蘭)[1900~?]은 1900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여성 최초로 단발을 실시하여 사회의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근우회(槿友會) 경성지회 설립에 참여하는 등 여성해방운동과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본명은 강해선(姜海先)이며, 강석자(姜石子)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강향란은 14세에 한남권번(漢南券番)에 들어가 가야금·병창·법고·정재무·선남중리요(善南中俚謠) 등의 기예를 익혔으며, 17세에 이미 탁월한 실력을 갖춘 기생으로 서울에서 명성이 높았다. 1920년 11월 기생을 그만두고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1921년 9월 서울 배화여학교(培花女學校) 보통과 4학년에 입학하였다. 이후 사랑하던 청년에게 실연을 당하여 삶의 낙을 잃고 자살 기도를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강향란은 서울 광교에 있는 이발관에서 스스로 단발하고 남장 차림으로 배화여학교에 갔으나 “머리 깎은 여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라는 이유로 퇴학당하였다.

강향란은 1922년 6월 1일부터 남자 강습소인 정측강습소(正則講習所)를 다녔는데, 강향란의 단발한 사진이 1922년 6월 24일 『동아일보』에 실리면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강향란은 “여자도 굵게 살자면 남자만 못지않다. 이전의 기생 생활을 버리고 남자처럼 살아보고 싶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여성의 남성화는 조선 사회를 병들게 하며, 조선의 성질과 여성성을 버리는 행위”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후 강향란은 일본 도쿄에 가서 외국어 학교에 입학하였다. 일본에서 사회주의사상을 받아들였으며, 러시아어를 배우고자 중국 상하이에 건너가기도 하였다. 1925년 부산에서 신문기자로 일하였으며, 1926년에는 「봉황의 면류관」이라는 정기탁 감독의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였다. 강향란은 1928년 항일 여성운동 단체인 근우회 경성지회 설립 준비 및 운영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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