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3028 |
---|---|
한자 | 崔錫鉉 |
영어공식명칭 | Choi Seokhyeon |
이칭/별칭 | 야마모토 쇼시[山本祥資]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권시용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
[개설]
최석현(崔錫鉉)[1893~1956]은 1893년 지금의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태어났다. 일본식 이름은 야마모토 쇼시[山本祥資]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경찰, 군수를 지내며 일제의 식민 통치와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하였다.
[활동 사항]
최석현은 1915년부터 경상북도 영주헌병분대에서 헌병보조원으로 일하였다. 1919년 보통경찰제도 개편 후 조선총독부 순사가 되었다. 이후 도경부보(道警部補), 경부보, 경시(警視)로 차근차근 승진하였다. 경상북도 경찰부 고등경찰부 소속으로 대구경찰서, 상주경찰서 등에서 근무하였다. 1942년 12월 강원도 고등경찰과장으로 옮겨 간 후 1945년 7월에는 영월군수로 전임하여 근무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최석현은 식민지 시기 경찰로 근무하며 민족 독립을 위하여 싸우던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한 공으로 승진과 함께 훈장을 받았다. 영주경찰서 순사로 근무하던 1919년 말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하던 정응봉(鄭應鳳), 박만병(朴萬秉) 등을 체포하여 특별공로상금을 받았다. 이후 대구경찰서에 재직 중이던 1926년에는 해외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위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던 이종흠(李棕欽)·손후익(孫厚翼)·김화식(金華植)·이재락(李在洛) 등을 체포하여 심문하였고 1927년 6월에는 상하이에서 체포된 김창숙(金昌淑)을 취조하였다. 1928년에는 동맹휴교를 주도한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학교] 학생 20여 명을 체포하였다. 이듬해 1929년에는 대구 조선은행 폭탄 투척 사건 관련자인 장진홍(張鎭弘)·김명숙(金明淑) 등을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체포하여 국내로 압송하였다. 1930년 3월에는 경상북도 상주공산당사건 관련자인 김동필(金東弼)·박창호(朴昌鎬)·권원하(權元河) 등을 체포하였으며, 1932년 1월부터 3월까지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사건 관련자인 권대형(權大衡)·이상조(李相祚)·김문옥(金文玉)·김상혁(金相赫) 등을 체포하였다. 1935년 5월에는 조선공산당 김천그룹 재건협의회사건 관련자인 이병일(李秉一)·나정운(羅鼎雲)·백낙도(白樂道) 등 60여 명을 체포하였다. 1939년 2월에는 반전운동을 전개한 박용칠(朴容七) 등 14명을 체포하였고, 1939년 10월에는 연극 활동을 통하여 반전운동을 한 김우현(金禹鉉) 등 10명을 체포하였다.
특히 최석현은 1937년 7월 7일부터 1940년 4월 28일까지 경상북도 경찰부 경부로 재직하며 대구역에서 군수품 수송, 반전 운동자 및 간첩 수사로 공을 세우고 중일전쟁에 협력하였다는 공적을 인정받아 일제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해방 후 반민특위 경상북도 조사부가 체포령을 내리자 잠적하였다.
최석현은 1956년 4월 9일 사망하였다.